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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세상진찰] 2년 前 식약처의 '인보사' 보도 자료

바람아님 2019. 5. 31. 05:02

조선일보 2019.05.30. 03:15

 

인보사 허가 취소한 식약처.. 2년전 보도자료 '칭찬 일색'
사소한 잘못·오류 철저히 찾아 '안 될 약'은 초기에 탈락시켜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주사 한 방으로 무릎 골관절염 통증을 개선한다는 '인보사'가 승인 당시와 다른 엉뚱한 세포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 취소됐다. 인보사는 두 해 전 2017년 7월 12일 사용 승인을 받았다. 당시 식약처가 인보사 허가를 내주며 배포한 보도 자료를 돌이켜보면 칭찬 일색이다. 항(抗)염증 작용 유전자가 들어갔으며, 국내서 개발된 최초 유전자 치료제이고, 퇴행성 관절염 분야에서는 세계 처음이라고 했다. 환자 100여명을 3~10년간 별도로 추적 조사한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했다. 이런 '훌륭한' 바이오 의약품을 식약처는 우물물이 잘 올라오도록 마중물을 넣는 작업 일환으로 실용화했다고 덧붙였다.

그랬던 인보사가 2년도 안 돼 한국 식약처는 까맣게 모른 채 미국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엉뚱한 세포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틀 전 식약처는 '인보사=가짜'라며 이를 입증하는 자체 세포 검사, 제약사 현장 실사, 유전자 추적 조사 결과 등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왜 이런 검사들이 식약처 심사 과정에서 이뤄지지 않았단 말인가.

200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라는 약이 있었다. 다국적 제약사 머크사가 개발한 약으로 1999년 출시됐다. 진통 효과도 뛰어나고 오래 먹어도 위장 장애가 없어 나오자마자 처방이 급증했다. 2003년 한 해 80여개국에서 3조원 가까이 팔렸다. 약 하나가 머크사 전체 매출의 10%를 넘었다. 그러다 이 약을 18개월 이상 복용한 경우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이 2배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옥스는 2004년 말 퇴출됐다.

머크사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다른 약물도 판매가 뚝 떨어졌다. 환자와 주주의 손해 배상 집단 소송이 이어졌다. 머크사는 나중에 약 7조원의 돈을 소송비와 합의금으로 물어줘야 했다. 인보사 코오롱생명과학이 비슷한 처지가 됐다. 인보사 불똥은 애꿎게 바이오 의약품 불신으로 이어져 요즘 정형외과 병원에서는 무릎 관절염에 멀쩡하게 쓰이던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 시술을 취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국 바이오에 대한 국제 신뢰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이옥스 개발 당시 제약사 내부와 심사 기관에서 심혈관 질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었다. 그러나 성과와 성장 가속 분위기에 의심과 걱정은 묻히고, 신약 개발로 내달렸던 것이다. 바이옥스 사태 이후 다국적 제약사들은 개발 전략을 수정했다. 기대주를 키워가던 방식에서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사소한 잘못이나 오류를 철저히 찾아내 '안 될 약은 초기에 탈락시키자'로 바꿨다. 시장에 나온 후 뒤늦게 문제가 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걸 깨쳤기 때문이다.

세포 치료 전문가 그룹에서 인보사 개발 시 제품화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골세포에 유전자를 장착시키고 배양하기가 생명공학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약사도 이것저것 해보고 제대로 잘 안 나오니까 데이터를 손본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가 기술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유전자 친자 등 세포 확인 검사를 했다면 작금의 인보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학이 발달해 있고, 최고 인재가 의대로 몰리는 우리나라는 바이오가 미래다. 앞으로 제대로 된 신약이 우리 손을 거쳐 줄줄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성과주의에 매달려선 안 된다. 초장부터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이오산업 돕는 길이다.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가속기와 제동기, 둘 다 필요하다. 이번 인보사 사태 교훈이지 싶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