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시간 약속에 철저하다. 업무 시작 30분 전, 약속 5분 전 도착이 '상식'으로 통한다. 지각 한번 잘못했다간 자칫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지난 3월 사쿠라다 요시히코(櫻田義孝) 당시 일본 올림픽 장관의 '3분 지각'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는 회의 때문에 중의원 예산심의회 야당 질의에 3분 지각했는데 야당 의원들은 4시간 넘게 질의를 보이콧하고 장관 경질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앞으로 약속에 5~10분 전 도착하는 사람이 되겠다"며 두 번이나 사과해야 했다.
이런 일본에 예외가 있다. 버스 운행 시간이다. 특파원 부임 전 '일본에선 버스도 배차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고 들었다. 현실은 달랐다. 지난 5일 오후 2시 48분, 도쿄 분쿄(文京)구 주택가 버스정류장. 버스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에 '2'라는 숫자가 떴다. 두 정거장 앞에 버스가 있다는 뜻이다. 두 정거장이면 3~4분 정도 걸리는데, 도착 예정 시간인 오후 2시 54분이 돼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버스는 안 보였다. 버스는 오후 3시 5분쯤 나타났는데, 다음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해 연달아 버스 두 대가 오는 꼴이 됐다. 일본에 10년 넘게 산 한 교민은 "버스가 자주 늦는다"며 "승객 중 노인, 휠체어·유모차를 끄는 사람 등을 안전하게 태우고 내리게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사회에 '지각' 버스가 용납되는 건 고령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공감대가 퍼졌기 때문이다. 낮 시간에 버스를 타면 승객 다수가 노인이다.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3대 대도시(도쿄·오사카·나고야) 65세 이상 노인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65세 미만의 3~4배에 달한다(2015년). 요즘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와 인명 피해가 잇따르면서 노인들의 자가용 운전도 점점 눈총을 받는 분위기다.
버스는 대부분 계단이 없는 저상형이고, 버스 앞쪽 좌석 모두가 교통 약자를 위한 우선석(優先席)이다. 운전사는 버스에 올라탄 승객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내릴 땐 정차 후에 일어나라는 안내가 나온다. 달리는 속도도 느리다. 그런데도 "빨리 가자"고 보채는 승객은 지난 1년간 본 적이 없다. 버스기사들은 최근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노인 승객이 늘어난 만큼 전보다 승하차에 시간이 더 걸린다" "휠체어 타는 승객이 한 명만 있어도 5분은 필요하다"고 했다. '노인 대국' 일본에선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미덕이 있다"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저출산도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는 지난 3일부터 '아기는 울어도 괜찮아'라고 쓰인 스티커와 포스터를 배부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운다고 부모가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마스이 겐이치(增井賢一) 어린이가족과장은 "아이가 우는 건 이제 메이와쿠(迷惑·민폐)가 아니다"라며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나길 바란다면 아이에게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3년 전 한 인터넷 언론사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이미 지방 14개 현에서 실시되고 있다.
고령사회 진입·저출산 문제를 우리보다 앞서 겪고 있는 일본의 변화에서 미래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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