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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왜 일본은 "차라리 한국은 없는 셈 치자"고 하는가/[리셋 코리아] 한·일 관계, 더 방치하면 한국 설 곳 없어진다

바람아님 2019. 6. 4. 09:16

[이하경 칼럼] 왜 일본은 "차라리 한국은 없는 셈 치자"고 하는가

중앙일보 2019.06.03. 00:07


'한국은 약속 안 지키는 나라' 낙인
일본서 한국 얘기하면 '바보' 취급
거대 중국 앞두고 한·일 손잡아야
한국 '징용판결' 액션플랜 내놔야
이하경 주필
일본 열도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한국은 국가 간 약속을 안 지키는가”라고 묻고 또 물었다. 분명히 우리가 위안부, 강제징용의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상종하지 못할 가해자로 전락했다. 맑은 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전이다.

지난주 윤상현 국회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한 합계 20선(選)의 야당 중진의원 다섯 사람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나준 유일한 의원은 자민당 참의원 비례대표 초선인 와타나베 미키 외교·방위위원장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불출마하는 예외적 인물이었다. 최악의 ‘한국 기피’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촉발됐다.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배상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며 어이없어 했다. 올해 1월에는 양자협의, 5월에는 중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한국은 모두 거부했다.

한국은 “사법절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며 어떤 액션플랜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이런 한국에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이달 28일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리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희망하는 양국 정상회담에 대해 냉소적이다.

일본 지한파(知韓派) 원로와 지난주 도쿄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전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재계 중진 10명의 만찬 모임에 동석했다는 그는 “한국 얘기를 꺼내면 ‘당신 바보 아닌가’라고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중국에 기울고 있는데 수백 년간 그랬으니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한국은 없는 셈 치고 가자는 분위기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고민은 깊었다. 중국을 상대하려면 양국이 협력해야 하는데 따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10~20년 뒤 중국의 경제력은 일본의 5배로 벌어져서 일본 말을 안들을 것이고, 한국말은 더더욱 안 들을 것”이라며 “두 나라가 손잡고, 미국이 뒤에서 받쳐줘야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본심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아베 총리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나자고 했다. 납치문제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트럼프가 ‘신조, 너 생각대로 해 봐’라고 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좋을 때는 한국을 통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이런 공식(formular)을 바꾸려는 상황이다.”

그는 아베와 2013년 골프를 치면서 “한국을 중시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아베는 “나는 중국을 신뢰한다. 중국은 한번 정하면 확실히 지킨다”고 했다.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이 “요즘 한·일 관계를 보면 아베 얘기가 맞지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한·일 관계의 악재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민관합동위원회 결론을 뒤집어버렸다. 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동위원장이었고, 당시 민정 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정부 측 위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가해자로 몰렸던 일본이 단숨에 피해자가 돼버렸고, 한국은 가해자의 난감한 처지로 내몰렸다.

이제 대법원 판결은 엎질러진 물이 됐고, 문 대통령은 난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을 기용한 것은 좋은 신호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을 주일대사로 임명한 것도 희망을 주고 있다. 남 대사는 “일본 인사들을 만나 ‘해결책을 찾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설득 중”이라고 했다.

늦기 전에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낙연 총리가 맡기로 한 민관위원회를 실제로 구성하고 가동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여야 추천 민간 전문가들로 대통령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작더라도 전향적 태도를 취하면 일본이 달라진다”고 한다.

일본도 한국 정부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최고재판소 판사 15명 가운데 한 사람은 외무성 출신이다. 미국에도 외교 관련 사안은 연방대법원이 국무부의 의견을 듣는 ‘법정 조언자(Amicus Curiae)’제도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관여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고, 일본도 협조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묘수를 짜내야 한다. 일본의 가나스기 겐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아베 총리를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만난다”고 했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안보와 경제의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부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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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일 관계, 더 방치하면 한국 설 곳 없어진다

중앙일보 2019.06.03. 00:08

미·일 접근에 한국 입지만 좁아져
강제징용 등 해결 방안 모색해야
장제국 동서대 총장
사방의 문을 닫고 방 안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형국이다. 밖에는 눈보라가 치는데도 애써 무시한다. 우려하는 사람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며 면박을 준다. 문을 열려는 사람에게는 찬바람 들어온다고 일제히 고함을 쳐대니 문을 열 엄두조차 못 낸다. 방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바깥 사정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 눈치 보느라 대책 마련을 주저한다. 그러는 사이 틈을 통해 한기가 스며들고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 이야기이다. 국내 논리에 갇혀 최악의 상태가 된 한·일 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 중이다.


일본은 미국이 주창하는 인도·태평양 구상 등 대중국 견제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또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주일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청, 무역 불균형 해소 요구 등 변덕스러운 트럼프에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제 일본을 배제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이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미 관계를 촘촘하게 엮어 놓았다.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서 중국을 겨냥한 ‘편 가르기’ 작업이 노골화되고 있다. 미·중 대결은 거스를 수 없는 패권 경쟁이다. 군사·안보는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과 시장을 누가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살벌한 대립이다. 확고한 미·일 동맹을 과시한 일본은 이미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상태에서 미·일이 접근하면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전략적 가치가 높은 일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워싱턴 조야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미국은 사드 정식 배치, 화웨이 사용 금지,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지지 등 한국에 대한 요구를 늘려가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입장을 가늠해 보려는 리트머스 실험이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최악이다. 우리의 입장이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악의 한·일 관계는 강제 징용 배상 판결 문제 등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이래서는 한국이 외통수에 처할 수밖에 없다. 국익을 우선한다면 이제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방문을 열 때가 됐다.


먼저, 우리 정부가 강제 징용 등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사법부의 판단이나 삼권분립 정신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 이달 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 전까지는 뭔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국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여론에 반하는 결단을 내리는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다. 일본과의 문제는 여론이 민감하다 보니 선뜻 나서기 힘든 것이 정치적 현실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나라를 위한 충정이 서려 있는 결단이라면 훗날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셋째, 정부가 큰 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여론의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일본과의 외교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방안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이제는 문을 열고 공기를 전환하고 더 심해질 차가운 폭풍우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