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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왜 名畵인가] [8] 김기창의 '군작'

바람아님 2013. 12. 24. 15:52

(출처-조선일보 2013.12.24.   최영미 시인)


[8] 김기창의 '군작(群雀)'

빈틈없이 엉겨붙어, 너희는 왜 싸우고 있느냐
나는 새를 싫어한다. 무서워서 가까이 않는다. 작은 참새도 손으로 만지지 못하고 참새구이는 당연히 못 먹는다. 낙엽이 우수수 밟히는 아파트의 공원길을 걷다가 까악 까치 소리가 들리면 정신이 사나워진다. 가을의 정취가 확 날아가 어서 집에 가야지. 서두르는 내 앞에 더 곤란한 적들이 나타나, 비둘기들이 비스킷을 쪼고 있다. 요즘 비둘기들은 간덩이가 부어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새똥을 피해 빙 돌아가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잠을 통 못 이루며 지난가을부터 계절을 심하게 앓아왔다. 전시회라도 볼까? 조각하는 젊은 친구, 조윤주를 불러냈다.

 김기창의 1959년작‘군작(群雀)’. 142×319㎝. /개인 소장


한국 근현대 회화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엄청난 작품들. 김기창의 '군작도' 앞에 오래 머물렀다. 천 마리쯤 되려나. 겹쳐진 작은 새들의 이미지가 어쩐지 불길했다. 제작 연도는 1959년. 육이오를 겪은 가난한 나라. 서로 잡아먹을 듯, 엉겨붙은 작은 생명들은 밥그릇을 다투는 한국인들이었다. 
좌우로 갈라져 싸우는 동포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들, 데모대를 막아선 전경들이었다. 전시회장에 몰린 관람객들, 내전 중인 시리아, 2013년에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치고받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겹쳐서 어른거린다. 조금 색이 진하고 옅을 뿐. 비슷하게 생긴 참새끼리 같은 하늘 밑에서, 니들 언제까지 싸울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툼이 계속되리라는 생각에 더 무서워진 그림. 덕수궁 하늘을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만이 홀로 아름다웠다.


작품 보려면… ▲내년 3월 30일까지, 월요일은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관람료 성인 6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초·중·고생 3000원, www.koreanpainting.kr (02)318-5745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작품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