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플랑드르, 오늘날 네덜란드 지역의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1390경~1441경)의 그림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마치 돋보기로 보는 것처럼 극도로 세밀하게 그려졌다. 금실을 짜 넣은 천사의 두꺼운 망토와 부드럽고 따스한 벨벳으로 만든 마리아의 드레스, 솜털 같은 천사의 머릿결과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와 보석이 모두 물감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니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얀 반 에이크는 이토록 극도로 사실적인 그림 속에 기독교의 상징을 곳곳에 심어 두었다. 예를 들어 흰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바닥 타일에 새겨진 다윗과 골리앗, 삼손과 델릴라의 이야기는 예수의 십자가형과 구원을 상징한다. 눈을 현혹하는 다채로운 물질의 향연 속에서도 경건한 종교적 메시지를 잃지 않는 것이 바로 플랑드르 미술의 전통이었다.
(출처-조선일보 2013.12.28.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용히 책을 읽던 성모 마리아에게 대천사 가브리엘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은총을 가득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AVE GR PLENA)." 그는 마리아가 곧 성령(聖靈)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거라고 알려준다. 마리아는 처녀 몸으로 어찌 아기를 낳을까 깜짝 놀라지만, 이미 그녀를 향해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가 날아오고 있다. 정숙한 자세로 복종하는 마리아가 대답하길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ECCE ANCILLA D I)." 마리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 글귀는 아래위가 뒤집혀 쓰여 있다.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 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리아가 대천사의 전갈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장면을 성모영보(聖母領報) 또는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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