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 뒷모습이 진실이다… 그림이 말하고 있죠

바람아님 2013. 12. 29. 10:27

(출처-조선일보 2013.12.26. 사비나 미술관 관장)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의 그림… 여인의 뒷모습이 결정적 역할 해요
풍경을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관람객과 같은 방향 보는 듯한 효과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뒷모습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앞모습은 꾸미거나 감출 수 있지만, 뒷모습은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더 진실하다는 뜻이지요. 미셸 투르니에처럼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중요하게 여긴 예술가도 있답니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대표적이지요. 풍경 속 인물을 그릴 때 대부분 뒷모습을 그렸거든요. 그는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요? 그림 1을 보면서 궁금증을 풀어봐요.

한 남자가 바위산에 올라 짙은 안개에 싸인 산봉우리와 산맥을 바라보고 있네요. 여러분도 남자와 같은 시선으로 대자연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왜 그럴까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그렸기 때문이에요. 뒷모습은 그림 속 인물과 관객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은 효과를 냅니다. 프리드리히는 종교인들이 신을 경배하는 것처럼 대자연을 숭배했어요. 그는 웅대한 자연을 대할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았다고 해요. 관객들이 그림 속 남자처럼 자연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뒷모습을 그린 거예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도 뒷모습을 그렸어요. 그림 2를 한번 보세요. 프리드리히처럼 뒷모습을 그렸지만, 다른 점이 있답니다. 무엇인지 눈치 챘나요? 프리드리히는 풍경 속 인물의 뒷모습을 그렸지만, 함메르쇼이는 실내에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그렸어요. 이 그림의 배경은 함메르쇼이가 살던 집이고, 등을 돌린 여인은 그의 아내랍니다. 실내는 신비로울 정도로 고요하고 평온한 기운이 감돌아요. 벽이나 그림 액자, 가구는 직사각형으로 그리고, 화려한 색 대신 회색·검정·갈색 등을 썼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내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에요. 여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공기와 빛, 가구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닐까요? 여인의 뒷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그림 속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입니다.


뒷모습을 그린 또 다른 작가를 만나볼까요? 19세기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실내에서 바깥을 관찰하는 도구로 뒷모습을 활용했답니다. 그림 3에서는 한 신사가 아파트 발코니에서 프랑스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등을 돌리고 선 남자는 부유한 파리 시민이군요. 파리 오스만 대로에 있는 발코니가 딸린 고급 아파트에 사는 걸 보면 말이지요. 당시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파리 시민의 인기를 끌었어요. 정원이 없는 아파트에서 신선한 바깥 공기를 접할 수 있는 데다 식물도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의 도시계획 아래 넓은 도로와 광장, 극장, 공원, 대형 상점 등을 갖추고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파리 경관을 구경할 수도 있었어요. 카유보트가 아파트 발코니에 선 신사의 뒷모습을 그린 이유를 이제 알겠지요? 그는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신사의 뒷모습을 통해 현대적 대도시로 변신한 파리시(市)와 시민의 변화된 일상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카유보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는 시민의 여가 생활을 뒷모습에 투영했어요. 그림 4는 파리 몽마르트르의 댄스홀인 물랭 루주('빨간 풍차'라는 뜻)에서 스타 무용수인 라 귈르가 관객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담은 아트포스터입니다.

로트레크는 왜 라 귈르의 뒷모습을 그렸을까요? 먼저 춤 동작을 실감 나게 그리기 위해서예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치마를 흔들면서 오른쪽 다리를 위로 차올리는 라 귈르의 모습은 앞보다 뒤에서 표현할 때 훨씬 더 경쾌하게 느껴지거든요. 다음은 관객의 시선으로 무용수의 춤 동작을 구경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어요. 로트레크는 거의 매일 물랭 루주를 방문해 무용수들의 공연을 관람하곤 했어요. 손님들로 북적이는 댄스홀의 분위기와 관객의 시선까지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뒷모습을 선택한 거예요.

여러분은 그동안 자신의 뒷모습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요? 혹시 앞모습을 멋지게 꾸미는 데만 신경 쓰지는 않았나요? 하지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꽤 많은 이가 여러분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고 있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여러분의 뒷모습을 관찰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어요.


[함께 생각해봐요]
오늘 소개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뒷모습’을 담았다는 거예요. 혹시 여러분은 뒷모습이 인상적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뒷모습은 어떻게 생겼나요? 여러분이 닮고 싶은 뒷모습과 그 이유를 글로 써보고, 그림으로도 표현해 보세요.


[함께 그려봐요]


▲예술가들은 신발이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인의 개성이나 욕구, 사회적 신분과 지위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가죽이 찢어지고 흙이 묻은 헌 구두를 통해 가난하고 고된 삶을 표현했지요. 물론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도 담았답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발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신발을 그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