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한국·일본·미국·중국·북한의 각자도생…동북아 안보 격랑/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북한의 직접적 군사 도발 가능성 높다”

바람아님 2019. 8. 5. 09:41

한국·일본·미국·중국·북한의 각자도생…동북아 안보 격랑


[중앙일보] 2019.08.04 17:44


동북아 외교안보의 균형추가 근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일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 결정으로 한·일 간에 본격적인 경제 전쟁에 돌입한데다, 미국은 중거리 핵전력 폐기 협정(INF) 탈퇴 직후 인 3일 아시아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뜻을 천명했다. '중국몽'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중국의 군비 확장을 억제하겠다는 미국의 정면 승부수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으면서도 미국이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에의 자위대 파견은 거부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3연속 미사일(방사포)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북한의 각자도생이다.   
 
미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방침”에 중 반발
일본도 미국과 손잡지만 호르무즈 파견은 거부
"미국 중심 동북아 질서 무너져, 5국 각자 도생"

격랑의 세계 휩쓰는 외교, 안보 난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격랑의 세계 휩쓰는 외교, 안보 난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원인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국제 질서 재편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미국 중심으로 움직였던 국제질서의 규범과 규칙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지정학적으로 외교가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첩첩산중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국가 이기주의가 우선인 상황에선 외부 환경에 민감한 한국의 취약성이 더욱 커진다”고 우려했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중국간 대결 분위기 속에서 현 정부의 안보 전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① 미 vs 중, 무역전쟁 이어 군비 경쟁 2라운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회동해 무역전쟁과 관련한 어떤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다. 사진은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환영회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회동해 무역전쟁과 관련한 어떤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다. 사진은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환영회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심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 상황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1일 자신의 트위터에 “9월 1일부터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약 10%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이 만나 무역협상 재개와 추가관세 보류에 합의한지 약 한달 만에 합의를 깨고 추가관세 부과를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그가 25%가 아닌 10% 관세를 꺼내든 것은, 일단 다음달로 예정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지금 서로 물러날 수 없는 한 판을 벌이고 있다”며 “단순한 관세 전쟁이 아닌 새로운 세계 질서를 두고 준 전시 상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 간 핵전력을 규제해 온 INF 조약에서 미국이 탈퇴한 뒤 나온 첫 공식 발언은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사거리 1000~5500km) 배치 의사였다. 현재 주일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 중국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1840km에 불과하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가 현실화되면 중국으로선 가만있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미 육군은 다영역 작전이 일환으로 2018년 하와이에서 지대함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가졌다. [사진 미 육군]

미 육군은 다영역 작전이 일환으로 2018년 하와이에서 지대함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가졌다. [사진 미 육군]

 
실제 미국은 중국이 INF 조약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했다고 보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2017년 4월 미 의회에서 "중국이 배치한 탄도 및 순항 미사일의 95%가 INF 조약 가입국 위반사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가 중국 군사력 확장에 대한 견제 의도인 셈이다.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3일 "지난해 미국 싱크탱크 공개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는 각각 6450개와 6490개를 보유했지만 중국은 280개 수준에 그친다"며 “미국의 목적은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도 3일 “미국이 중국을 INF 탈퇴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후속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②한 vs 중 사드 갈등도 여전한데…미사일 배치는 ‘어불성설’ 

 
[주한미군 "평택기지서 '비활성화탄' 사드 발사대... 주한미군 "평택기지서 '비활성화탄' 사드 발사대 장착 훈련"   (서울=연합뉴스) 주한미군은 지난주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비활성화탄(inert)'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에 정착하는 훈련을 했다고 24일 밝혔다. 2019.4.24 [주한미군 제35방공포여단 페이스북]   photo@yna.co.kr/2019-04-24 07:25:58/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주한미군 "평택기지서 '비활성화탄' 사드 발사대... 주한미군 "평택기지서 '비활성화탄' 사드 발사대 장착 훈련" (서울=연합뉴스) 주한미군은 지난주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비활성화탄(inert)'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에 정착하는 훈련을 했다고 24일 밝혔다. 2019.4.24

[주한미군 제35방공포여단 페이스북] photo@yna.co.kr/2019-04-24 07:25:58/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중간 군사적 대립 구도가 심화될수록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중국과의 외교갈등으로 번졌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배치 문제다. 2년을 끌어온 사드 갈등에 대해 한국 정부는 봉인됐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한중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ARF 회의에서 참석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사드 문제를  재차 거론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중국 국방백서에서도 사드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6월 시진핑 주석도 G20 계기로 열린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인사말 나누는 한중 외교장관   (방콕=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양자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2019.8.1   uwg806@yna.co.kr/2019-08-01 12:58:53/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인사말 나누는 한중 외교장관 (방콕=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양자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2019.8.1 uwg806@yna.co.kr/2019-08-01 12:58:53/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려 할 경우 한중관계는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다만 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에 미사일 배치를 검토하느냐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배치 국가가 어디가 될지 미래 가능성을 추측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③한 vs 일, 치고 받는 사이 손 놓은 미국은 방위비 청구서만  

 
한ㆍ일 관계를 두곤 2일 양국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이 나왔다.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 조치 강행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생중계로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주 8ㆍ15 광복절에서도 이같은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이 기대했던 미국의 중재 역할은 '바램'으로 끝나가는 분위기다. 오히려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자기 몫을 챙기는 데 혈안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이동 중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이동 중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논의가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사일 배치에 따른 관리 비용 부담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④남 vs 북, 북한의 ‘한국 패싱’…발사체 3연타 도발  

  
지난 5월 4일 동해 해상에서 열린 화력타격훈련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 발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4일 동해 해상에서 열린 화력타격훈련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 발사 모습. [연합뉴스]

       
남북관계도 고민거리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에 이어 31일엔 ‘신형 대구경 조종 방사포’, 이달 2일엔 두 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상으로 쐈다. 한ㆍ미가 5일부터 진행하는 연합군사훈련 ‘19-2 동맹’ 전에 반발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이나, 훈련 기간 중 어떤 후속 대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금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대화해야 하는 때라는 판단 하에 남북 관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우려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이 핵능력 고도화에 조용히 박차를 가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교수는 “한ㆍ일 관계로 궁지에 몰린 한국 정부가 기댈 곳은 남북 관계뿐이라는 점을 북한은 십분 활용할 것”이라며 “한국을 더욱 애태우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수진·박성훈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북한의 직접적 군사 도발 가능성 높다”

동아일보 2019-08-04 07:59
           
인터뷰 |
“北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려면 美 핵우산에 편입하고 전술핵도 도입해야”
           

최근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와 경제 현실은 ‘평화’나 ‘번영’과 거리가 멀다.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동해상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예고 없이 침범해 연합훈련을 실시했고, 러시아 초계기는 독도 영공을 침범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는 3000t급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7월 25일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엿새 뒤 다시 신형 발사체를 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보 못지않게 우리가 처한 경제 현실도 녹록지 않다. 일본은 수출규제라는 경제 보복 조치에 나섰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농업 분야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겨냥해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북·중·러 3국이 우리를 협공하고 있고, 경제 측면에서는 전통적 동맹국이자 우방국인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압박당하고 있는, 말 그대로 ‘오면초가(五面楚歌)’ 형세다.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와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사항이다. 오면초가에 빠진 대한민국은 어떻게 안보 및 경제 활로를 열어나가야 할까.

■북핵 응징 수단 갖춰야”

러시아 국방부가 중국 공군과 동해 해역에서 실시한 첫 연합 공중훈련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러시아 TU-95 전투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할 당시 한국 공군 F-15K로 추정되는 전투기 2대가 나란히 비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동아DB]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한반도 내부만 보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우물 안 개구리 식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아래 북한이 군사 도발을 감행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도발을 재개한 이상 지난해 체결한 9·19 군사 분야 남북합의서(남북군사합의서)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과 인터뷰는 7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전쟁기념재단 사무실에서 2시간 넘게 진행했다.

주요기사

작금의 안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현 정부가 우리의 안보와 경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근접할 만큼 크게 성장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동북아에서 우리는 여전히 약소국이에요. 특히 한반도 내부만 보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북한 배후에는 세계 2위 국력을 보유한 중국과 세계 2위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한일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최근 카디즈를 동시에 침범했습니다.

“두 가지 의도가 있어 보여요. 하나는 느슨해 보이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체계를 점검하기 위한 거죠. 그런데 미국이 초동 단계에서 대응하지 않았고,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어요. 미국, 일본과 우리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 되고 말았죠. 다른 하나는 우리 정부와 한국군의 의지, 능력을 시험해보려 한 것일 수 있어요. 우리 공군이 신속히 출격해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해 사격으로 응수함으로써 굳건한 국토 수호 의지를 보여준 것은 다행입니다.”

8월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7월 3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시험사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SLBM 탑재가 가능한 3000t급 잠수함 건조를 과시하는가 하면,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말썽을 일으켜 상대를 협상장에 나오게 하는 수법을 즐겨 썼어요. 이번에도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제를 해소하고 싶으면 조건을 낮추라’고 무력시위를 하고 있는 거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려는 의도입니다. 한편으로는 곧 있을 지휘소 훈련(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우리에게 표출한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측면에서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북한 내부를 결속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등으로 우리의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국민이 적잖습니다.

“우리도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할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핵이) 없으니 동맹국인 미국에 전술핵 재반입을 요구하고, 확장억제를 통해 미국 핵우산에 편입되도록 해야죠. 북한이 핵·미사일을 보유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수밖에….”

“감시·탐지 능력 확보 위한 한미일 협력 필수”

김 전 장관은 “북한 핵탄두는 공격 수단인 반면, 핵우산은 공격에 대비한 방어 수단”이라며 “주한미군 역시 전쟁을 억제하고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할 응징 수단인 핵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발사 전 타격’을 위한 감시·탐지 능력 확보를 위해 미국, 일본과 긴밀하게 정보 교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사 전 타격하려면 우리가 북한의 동향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유한 감시 장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우리보다 더 많은 인공위성을 보유한 미국, 일본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봐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북한이 남한을 향해 직접적인 군사 위협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까?

“북한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한일 갈등이 심화돼 한국이 고립무원 상태에 빠져 있다고 판단한다면 직접적인 군사 도발을 해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미·중 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즉 한반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다급해진 미국이 중국 측에 ‘협상조건을 완화할 테니 북한을 좀 말려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이 타협 조건을 만들려고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사건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G20 정상회담 직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전격 방문하면서 중국과 북한이 급속히 결속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이후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카디즈를 침범해왔고,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김 전 장관은 “한미동맹 약화를 방치하고, 한일 갈등 상황을 심화해 스스로 애치슨 라인을 초래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1950년 초 미국이 한국을 빼고 알류샨열도에서 일본과 필리핀을 잇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극동 방위선으로 설정한 이후 6·25전쟁이 발발했듯,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동해 카디즈를 침범한 현 상황에서 미국이 무대응하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와 갈등을 빚는 상황이 자칫 제2 애치슨 라인으로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전 장관은 “우선 문제가 많은 남북군사합의서부터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이 군사합의를 하는 목적은 한반도 내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체결한 남북군사합의는 서로의 투명성을 보장할 검증 조치가 전혀 없는 위험한 약속이에요. 만약 북한이 태도를 바꿔 군사적으로 도발해와도 이를 막을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정찰 기능 축소=은밀한 공격 기회 제공”

전쟁기념관 앞에 선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김도균]

남북군사합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남북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 외에는 실질적으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점이에요. 특히 가장 심각한 위협인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조치가 없어요. 군비통제는 신뢰 구축에서 시작해 운용적 군비통제, 구조적 군비통제로 확장해가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남북군사합의에는 통신선 확립 외에는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운용적 군비통제에 해당하는 한미연합훈련 중지와 DMZ(비무장지대) 내 GP를 파괴하는 것만 먼저 시행하게 돼 있어요. 더군다나 양측의 군사 행위를 검증할 공중정찰 기능은 대폭 제한해놓았습니다. 공중정찰 기능 축소는 북한이 은밀하게 공격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아주 잘못된 조치입니다.”

김 전 장관은 “공중정찰 기능을 대폭 제한한 것은 유럽의 군비통제 조치인 오픈 스카이와는 정반대 조치”라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은 상대방 정찰기가 자국에 들어와 샅샅이 살펴볼 수 있도록 서로 영공을 개방했어요. 문서로 합의한 내용이 실질적으로 지켜지는지 직접 와서 확인해보라고 영공을 개방한 거죠. 서로 정찰을 허용하는 수준이 돼야 신뢰 구축 단계를 넘어 운용적 군비통제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신뢰 구축 조치 없이 DMZ 20km 이내에서 공중정찰을 하지 못하게 막아놨어요. 상대방이 DMZ 주변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게 된 거죠.”

김 전 장관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도발을 재개한 이상 지난해 체결한 남북군사합의서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군사합의에서 애매한 부분을 이번 기회에 고쳐야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망하는 길로 들어섭니다.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한 북한 곁에는 세계 2, 3위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와 중국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은 어떻습니까. 한미동맹은 여전히 굳건한가요. 북·중·러에 맞설 한미일 협력체계에 이상은 없나요. 춘추전국시대에 ‘사마법(司馬法)’이라는 유명한 병법서를 지은 중국 제나라 대부 사마양저가 그랬죠. ‘천하가 태평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天下雖安 忘戰必危)’고. 지금이야말로 유비무환의 자세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체계를 구축해 우리의 안보 태세를 굳건히 확립해야 할 때입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0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