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8.01. 00:02
'나쁜 평화론' 집착에 군심 흩어져
아베 문제도 정치로 푸는 게 순리
조국, 자칫 모시는 대통령 욕보여
51%의 승리 혹은 과유불급
어떤 이가 묻기를 “자장과 자하, 둘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하니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란다”라고 답하였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겠네요”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국씨는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적’ ‘친일’로 몰더니 최근엔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부정하면 헌법 위반자가 된다”(7월 30일자 페북)는 이상한 주장까지 폈다. 우리 헌법은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대법원 판결문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헌법 위반자가 된다는 조국씨야말로 헌법정신 위반자가 아닌가 한다. 더구나 조씨는 입법부를 경시하는 정권의 풍토상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에 관계없이 조만간 법무부 장관에 오를 것이 예상된다.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법에 유권해석을 내리고 이를 바로 집행하는 엄중한 자리인데 이런 수준의 법의식을 가진 사람이 그 일을 맡을 때 국민들이 얼마만큼 승복할지 의문이다. 자칫 자기가 모시는 대통령을 욕보일 수 있다. 조국씨는 민정수석을 지내고 법무장관행 티켓을 거머쥔 공공적인 인물답게 앞으로 자중자애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 죽는다. 생명은 먹을 것에 달려 있고, 다스림은 일 처리에 달려 있다. 일 처리를 잘하지 않고서 잘 다스리는 사람을 예로부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나라의 장점이 오히려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 말은 한 가지 장점으로 여기는 국가적 목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다 생기는 병통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백성의 먹을 것을 돌보는 일 처리에서 문제가 터진다. 약도 과하게 쓰면 독이 되는 법이다. 현 정권은 아베 일본 총리의 경제보복에 대해 타협 가능한 협상안을 마련하고 정상회담을 열어 정치적으로 타결짓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순리다. 반대로 ‘죽창가’나 틀어대고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 “불량배한테 얻어맞았으니 대들어야 한다”는 사생결단식 방향은 역리가 아닐 수 없다. 관중의 시각으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나쁜 일 처리 방식이다. 과유불급은 51%의 승리 정신이다.
100% 완승을 꾀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층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장점을 ‘반일 민족주의’로 내세워 인구의 90%가 해방 후 태어난 시점에서 ‘친일세력 청산’을 밀어붙이다 이제 많은 선의의 국민을 일본상품 불매 전선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일본 경제엔 실제로 타격 주는 바가 있긴 하지만 한국인 소상공자영업자가 한국 자금으로 차린 스시집이나 이자카야, 일제 잡화물 판매점 같은 곳도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다. 반일이 자해가 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관자』제3편 ‘권수’(權修·권력을 유지하는 방법)는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국력을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성을 신중히 동원해야 한다.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민력의 소진을 신중히 해야 한다. 백성을 보살펴 기르지 않으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백성을 보살펴 관리하지 않으면 머물러 있어도 부릴 수 없다.”
‘권수’에선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문제를 백성의 먹을 것을 지키는 문제와 동일시한다. 영토는 물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나눠 갖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수엔 이런 말이 있다. “옳은 것을 보면 기뻐하되 분명한 표창이 있어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미워하되 실질적인 제재(刑)가 있어야 한다. 옳은 것을 보고서도 기뻐만 하고 분명한 표창이 없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보고서도 미워만 하고 눈에 보이는 제재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화되기를 바랄 수 없다.”
1953년 정전 이래 대한민국 영공이 침범당한 초유의 7·23 사건이 벌어지고 거의 열흘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러시아군을 격퇴한 자랑스런 한국 공군 파일럿들의 얼굴조차 모르고 있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까닭도 해명도 없이 선택한 이른바 ‘로우 키’ 전략 때문이다. 군사 강대국인 러시아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든가 반일 경제전쟁의 초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나라의 울타리를 지켜낸 군사들의 옳은 행동을 그들은 왜 자랑도 표창도 하지 않는가. 우리의 영토를 유린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듯 마는 듯 제재는커녕 침범 여부조차 분명히 가리지 못하고 있으니 같은 일이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면 어느 병력이 의지와 집념을 갖고 맞서려 하겠는가.
로우 키 전략은 김정은의 7·25 및 7·31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불법 연속 시험 발사 때도 일관됐다. 김정은이 ‘남조선 당국자’한테 “신형 무기도입이나 군사연습을 하지 말라”고 협박했음에도 국가원수인 문재인 대통령은 일언반구 없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조차 주재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러시아 침범군이나 김정은의 위협에 저자세 행보는 “나쁜 평화라도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문 대통령의 평화론에 부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는 ‘나쁜 평화론’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나라의 나라됨, 국민의 국민됨을 모두 잃어버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지나치는 바람에 모자라게 됐다.
국가 경영에서 과유불급의 진정한 교훈은 특정 관념에 매달리다 보면 국민의 감화 즉, 애국애향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흩어져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라가 기우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고,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으나 망한 것은 다시 일으킬 수 없다”(『관자』목민편)라는 관중의 실무 경험을 집권 세력이 가벼이 여기지 않길 바란다.
*참고한 책:『관자』, 김필수 등 옮김, 2016년 개정2판, 소나무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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