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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 정책 대전환 말고 무슨 방법 있는가

바람아님 2019. 8. 5. 06:48

(조선일보  2019.08.05)


일본이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맞대응'을 선언한 이후 정부가 부산하게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일본 보복의 대응 예산 2732억원이 포함된 추경의 75%를 9월 말까지 집행하고, 피해 기업들에

대출 만기 연장 등의 금융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에 매년 1조원 이상 예산을 투입한다는

대책도 나왔다. 다급한 불을 끄기 위한 긴급 처방일 것이다. 이 문제는 국가의 과학 기술 역량과 관계된 것으로

이렇게 국산화가 쉽게 가능하다면 기업들이 그동안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정책 기조의 전환 없이 이런 임기응변 조치로 일본의 무역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의 보복은 한국의 주력 기업과 산업 생태계를 겨냥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에 이어 반도체 필수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수소차의 연료탱크 제작용 탄소섬유, 전기차 배터리 파우치(2차 연료전지 분리막), 공작기계 등으로 수출 규제가 확대될

전망이다. 하나같이 한국이 경쟁력 우위를 가진 제조 업종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재·부품과 장비들이다.

일본 정부는 이 품목들의 대한국 수출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함으로써 한국 주력 산업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 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 제조업의 싹을 자르려 한다는 주장을 단순한 의구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정부는 최저임금 급속 인상, 법인세 인상,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 강행, 환경 규제 강화 등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속속 실행해 왔다. 대기업 귀족 노조는 법 위에 군림하는데 정부는 민노총 눈치만 보며

불법·폭주를 방치해왔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 등의 먼지떨이식 수사·조사는 기업 경영을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다. 일련의 반기업 정책들이 투자 축소를 낳고, 고용 악화와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경제 전선의 최전방 공격수가 기업인데, 기업에 총질하고 발목 잡는 자해(自害) 정책을 지속해선

일본과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한국 경제가 자멸하고 말 것이다.


일본이 경제 전쟁까지 불사하며 한국 산업, 한국 대표 기업 죽이기에 나섰는데, 지금과 같은 반(反)기업 정책을

지속해선 안 된다. 소득 주도 성장론, 규제 일변도의 정책 대신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시장의 활력을 살리는

경제 활성화 기조로 정책 방향을 대전환해야 한다. 마구잡이 복지나 관제 일자리 정책에 따른 재정 낭비를 전면

재검토해 부품·소재 산업 투자 등 경제 활력 전체를 되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경제 전쟁의 승부는 미래 성장 산업에서 누가 승자가 되느냐에 달려 있다. 선진국들이 인공지능·빅데이터·자율차·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를 키우려고 총력전을 펼치는데 한국 정부는 이익 집단 반발만 나오면 신생 기업의 싹을 죽여버리는

포퓰리즘을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우리의 반도체 산업마저 일본의 공격 앞에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숨 넘어가는 기업에 산소호흡기 대주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론 안 된다.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통해 기업 사기를 북돋우고,

기업인들의 야성적 충동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 대내외에 정책 대전환의 신호를 보여주기 위해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대폭 확대하고 법인세 인하나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제 전쟁터에선 오로지

힘과 실력이 승부를 가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