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무지와 자만이 자초한 외교 재앙
문화일보 2019.08.01. 12:00
‘전후 세대’ 일본의 경제 보복
한국 고립무원 상징하는 단면
미국은 등 돌리고 中·北은 협박
개도국 희망에서 동네북 전락
반미·친중·종북의 당연한 귀결
동맹의 전면 복귀가 유일 해법
한국이 갑자기 세계의 동네북이 됐다. 그리되리라는 우려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빨리 심각한 형태로 닥쳐오고 있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동북아시아에서 70년간 약소국 한국의 안보를 지탱해 온 한·미 동맹의 보호막을 한국이 스스로 반쯤 걷어내기가 무섭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장차 대외관계에서 겪어야 할 필연적 운명의 파편들이 봇물 터지듯 몰려들고 있다.
최근 일본이 한·일 과거사 싸움의 와중에 작심하고 무역보복의 칼을 뽑았다. 이는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마음의 빚이 없는 일본 전후 세대의 새로운 대(對)한반도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처해 있는 고립무원의 상황이 초래한 재앙 리스트의 한 항목일 뿐이다. 이를 저지하려던 한국 외교는 워싱턴에서도 제네바에서도 외교적 역학관계의 냉엄한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
만일 한·미 동맹이 건재하고 한·미·일 삼각협력이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면, 일본이 아무리 화가 난들 감히 그런 조치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미국이 이를 방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적국인 중국과 북한 진영을 기웃거리며 국제현안에서 그들과 뜻을 함께하고 그들의 오랜 소망인 한·미·일 삼각협력 파괴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두둔할 이유는 사라졌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기를 스스로 거부했고, 그로 인해 한국은 미국이 굳이 지켜줄 이유도 명분도 가치도 없는 국가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그간 지극정성을 기울여 온 중국과 북한이라도 같은 편에 서서 응원해주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재로 재미를 본 중국은 고압적 한국 길들이기를 계속하고 있고, 중국 군용기들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최근엔 한·미 합동훈련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려는 듯 중국과 러시아의 공군 합동훈련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서 벌어졌고, 러시아 군용기는 버젓이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그들이 그간 이 나라 방어망을 감히 침범하지 못한 건 한국 뒤에 버티고 선 미국과 한·미·일 삼각체제의 위력 때문이었다. 날로 험악해지는 북·중·러 북방 삼각체제의 폭풍 속에서 모든 보호막을 찢고 홀로 나선 한국이 맞게 될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북한의 태도는 중국보다 더 실망스럽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성난 미국을 설득해 북한이 꿈에 그리던 미·북 정상회담을 주선했고, 대북제재 해제에도 진력했다. 또한 북한이 두려워하는 한·미 합동훈련들을 폐지·축소하고 휴전선 지역 정찰과 확성기방송까지 중단하는 등 북한의 수십 년 숙원을 이뤄줬다. 그러나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종주국이 속방을 대하듯 위협적 대남 길들이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실시한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를 한국 정부가 애써 못 본 체하자, 이건 남한에 대한 위협의 뜻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달아줬다.
한국에 대한 북방 삼각체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미국은 무관심할 뿐이다.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 일본의 안보와 무관하니 필요하면 한국 정부가 그간 정성을 바쳐 온 중국, 북한과 직접 얘기해서 해결해 보라는 식이다. 한국이 처한 안보 상황에 대한 미국의 이런 냉정한 태도는 한국 정부가 선택한 ‘동맹의 배신’에 대한 미국의 응답이다. 그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인 청구서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문제 등을 필두로 제기돼 올 전망이다.
한때 한국은 동아시아의 외교 강국이었고 세계 개도국들의 희망이었다. 북한의 흡수통일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런 한국이 왜 갑자기 동맹도 친구도 없는 나라, 아무나 흔들고 걷어차도 괜찮은 나라가 된 것일까? 우리 외교와 안보체제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처럼 철저히 파괴되고 유린당한 것일까? 이는 그간 이 나라가 반일민족주의로 교묘히 포장된 좌경반미주의, 민족 공조의 이름으로 미화된 종북 통일운동, 균형외교의 간판 뒤에 숨겨진 대중국 굴종 외교의 허상에 현혹돼 우리 국가안보의 견고한 성채인 한·미 동맹을 스스로 허물어버린 결과다. 우리의 무지와 자만이 자초한 이 외교적 재앙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하나뿐이다. 한·미 동맹으로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복귀만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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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기와 리더십 그리고 말
머니투데이 2019.08.01. 11:25
동북아시아 지역 정세가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미국 등 지역 이해가 걸린 모든 나라가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서로 다른 계산으로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역의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을 위한 경쟁적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것은 신사들의 게임이 아니다. 협박과 위협, 배신이 난무하고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는 거친 게임이다. 아베의 경제보복조치가 난데없이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일본 내부 선거용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동북아질서 재편을 두고 벌어지는 합종연횡 고차 방정식 게임에서 일본의 국가이익을 고려한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전략적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울한 데자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어렵다. 구한말, 임진왜란, 병자호란 얘기가 터무니없는 비유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량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은 당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다. 우리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고 강대국의 도움 손길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드려 맞으면서도 대책 없이 일본이 어디 때릴지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공직자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행동은 없고 말만 앞세우는 낯익은 딸깍발이 서생의 모습은 분노를 치밀게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정파적 이익을 위해 내부적으로 치고받는데 여념이 없는, 과거의 데자뷔 같은 정치 현실까지 더하니 비애감마저 든다.
전쟁과 협상
전쟁은 원래 무역이나 경제적 위기 때문에 발생한다. 익숙해진 구조적 갈등에 둔감해질 때쯤, 설마, 아차 하면서 일어나는 게 전쟁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평화를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서구 정치학자들이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게 공연한 소리로 들린다. 최소한 동북아시아에서는 그렇다.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인데 두 나라 사이의 상호적대감은 일반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려울 정도로 뿌리 깊다. 우리나라 경제의 심장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아베의 이번 조치는 두 나라 사이의 적대감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물리적 충돌까지 갈 수 있는 현실적 실체임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두렵더라도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심장을 겨누는 적들에게 고개 숙이고 협상을 구걸할 수는 없다. 사인(私人)들 간에는 그럴 수 있어도 국가 간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는 어떤 나라도 유지될 수 없다.
조국
뱀처럼 현명하고 호랑이 같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는 냉철하고 강인한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정국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얼마 전 퇴임한 조국 청와대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유력한 차기 법무부장관 후보로도 거론된다. 정부 핵심 요직에 있으면서 SNS를 통해 그만큼 많은 말거리를 만든 이도 드물다. 전쟁, 친일, 이적 등 거침없다. 지식인 부류 중에 조국 전 수석을 옹호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있더라도 옹호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사실 사리분별이 있는 이라면 조국의 최근 언행을 두둔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상황을 전쟁에 준하는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고 싸워 이기겠다는 그의 태도만은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약하지 않고 강인해야 할 때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고 해야 협상도 가능한 법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전략 (tit-for-tat strategy)은 국제정치이론 첫 학기에 배우는 내용이다. 배신에는 배신으로, 협력에는 협력으로 대응할 때 플레이어가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은 국제 정치 현실에서 진리에 가깝다.
리더십은 말에서 나온다
위기의 국면에서 공개적으로 어떤 발언을 하는가에 따라 리더의 자질이 판가름 난다. 조국은 이번 일로 분명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위기 상황에서 주저하거나 좌고우면해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해야 할 말을 거침없이 할 때 사람들은 감동하고 열광한다. 결과적으로 조국 개인에게 정치적으로 플러스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 이번 발언들이 사적 이해타산을 계산해 나온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는 한줌의 사람들 마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의 말의 진정성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진정성이 있는 말과 없는 말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말을 통해 당사자가 어떤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권력을 가진 보스나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는 생각과 거리가 있는 말은 손해가 되지만 진정성 있는 말이다. 그 반대는 이익은 되지만 계산적이고 정파적인 발언일 뿐이다. 아쉽게도 조국 전 수석의 말들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리틀 문재인이라 불리는 그가 일본과의 경제, 외교 전쟁 일선 담당자들이나 대통령이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하고, 위기에 빠진 문재인 정부 치어리더 역할을 떠맡은 것으로 이해하더라도, 진정 이 상황을 전쟁에 준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면 내부를 향한 그의 독설은 납득하기 어렵다. 전쟁마저도 한 정파의 지지 세력만으로 치르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위기의 리더십
조국은 누가 머래도 상품가치가 높은 정치인이다. 잘생기고 젊다. 서생적 문제의식은 넘치고, 상인의 감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현실감각과 실천력도 있어 보인다. 우리 사회의 미래 지도자 역량이 충분해 보이는 그가 국가적 위기의 국면에서 우리 모두의 리더가 아니라 한 정파와 세력의 대표를 자임하는 점은 안타깝다. 국가적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편에 속하는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가르고 나누는 말이 아니라 부서지고 갈라진 마음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 큰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뻔한 얘기지만 때로는 뻔한 것을 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부의 비판자들을 향한 독설로 정파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대통령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위기상황에서 우리 역량을 총력으로 결집할 수 있는 지도자, 불안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위무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지도자, 시민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그들의 땀과 피와 눈물을 요구하고 자발적 헌신을 이끌어내는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다.
내부를 향한 뿌리 깊은 적대감을 넘어서야
그 어떤 대상에 대한 집단적 혐오와 적개심이 존재하는 곳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있을 자리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과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적 감정이 엄연한 실체로 존재한다. 외부로 향한 그런 적개심이 우리 사회의 성숙과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그런 집단적 감정은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런 적개심의 본질이 외부적이지 않고 내부적이라는 데 있다. 북한과 일본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 빨갱이와 친일파라는 낙인찍기로 상징되는 내부 구성원을 향한 적대감이 본질이라는 점이다. 실체로 존재하는 외부의 진짜 적에게는 나약하고, 내부에 구성된 허구적 적들에는 가혹한 태도와 정신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망국으로 이끄는 주범이다. 당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은 친일파와 빨갱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새로운 리더십이 필수적임을 절감케 한다.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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