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9.08.06. 11:50
대한민국이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 강국이 되는 것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 냉철하게 이해해야 한다.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몽상(夢想)에 기대면 강대국은커녕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의 발언은 신중하고 정치(精緻)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 발언에는 4가지 심각한 맹점(盲點)이 있어 걱정된다.
첫째, 발언 시점부터 부적절하다. 일본이 오는 28일 1200여 개 품목에 대해 백색국가 제외를 시행할 경우, 기업들이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다. 6개월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인데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남북 경협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 특히, 대전제인 북한 핵무기 폐기는 더 멀어지고 있다. 백병전이 벌어졌는데 지휘관이 신무기 개발해 싸우자는 식이다.
둘째, 국내총생산(GDP) 순위 세계 12위인 대한민국이 경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최빈국인 북한과 손잡고 세계 3위 경제 대국 일본을 ‘단숨에’ 이기겠다는 발상도 비현실적이다.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의 53분의 1 수준이다.
셋째, 문 대통령은 “일본 경제가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이라고 했는데 사실부터 틀렸다. 세계가 일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기술력이다. ICT 분야의 소프트웨어 인력만 해도 올해 기준 일본은 108만 명, 한국은 39만 명으로 3배나 차이 난다. 노벨상 수상자는 일본이 24명으로 과학 강국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기반과학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반세기가 걸릴지 모른다”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니다.
넷째, 독일도 통독 이후 20년 이상 후유증을 앓았다. 북한과 경제 협력을 위해선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가 필수다. 북한은 상당 기간 동안 한국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경제 통합을 무리하게 서두르면 한국경제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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