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독재 愛用品, 국익의 '제2 全盛시대'
'위협'을 '위협'이라 할 수 있어야 안보 主導 능력 확보
정부가 중대 결정을 내리면서 그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다 쓰는 단어가 '국익(國益)'이다. 국민 대부분이 두말없이 정부 결정을 납득할 경우엔 굳이 '국익'이라는 디딤돌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정부 입에서 '국익'이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올수록 '국익'의 정체를 따져 물어야 한다. 군사독재 시대는 '국익'의 전성시대(全盛時代)였다. 정부 발표문은 '국익'을 수행비서처럼 달고 다녔다. 집권 세력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국익'은 제2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 대미(對美)·대중·대일 외교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 으레 '국익'이란 방패를 들고 나왔다. 당파적(黨派的) 정책의 명분 쌓기에도 '국익'을 끌어온다. '국익(national interest)'은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정당 등의 정치단체·노동조합·특정 지역의 이익보다 상위(上位)에 있는 이익으로 국가가 국제 관계에서 추구하는 목표'다. '대한민국 국익'은 '국가 안전 보장을 확보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국민 복리(福利) 증진과 국가 번영을 이룩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국익'의 문제점은 그때그때의 '국익이 무엇이냐'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主體)가 당시의 집권 세력이라는 것이다. 정권은 흔히 집권당의 이익, 자기네를 지지하거나 연대(連帶)한 세력의 '부분 이익'을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한다. 정권이 '국익'을 명분으로 내세울 때 '누구의 어떤 이익이냐'고 반드시 되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 경제 상호 보복→한국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미국의 한국을 향한 공개적 실망 표시→한국의 미국에 대한 불만 표시 자제(自制) 요구→미국의 실망 표시 반복'으로 증폭(增幅)되면서 '국익'의 출동 횟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국익'을 정부의 국가 안보 관리 능력 부재(不在)를 비판하는 소리를 막는 입마개로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동맹 관계에서 은밀히 전해도 될 말을 일부러 미국 대사를 부르고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반일(反日)로 재미를 봐서 이제 반미(反美)로 흥행(興行)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행동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유일한 안보 자산이다. 미국 말고는 동맹국이 없다. 한·미 동맹이 변질되고 해체되면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끊기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 이후 워싱턴에선 한국을 두둔하는 미국 측 인사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 대신 '동북아 안보 도전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 '한국 주둔 미군에 대한 위협 증가' '리앙쿠르 암초(독도의 미국식 표현)에서 군사 훈련은 시기·메시지·규모 모두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돼'라는 소리만 들려온다. 한·미 동맹 70년 역사에서 없던 일이다. 대통령과 대통령 사람들은 국가 명줄이 달린 문제를 오렌지나 양파 수입 문제 다루듯 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파기 결정 배경 설명에서 '국익을 위한 외교 공간 창출' '안보 주도 역량 강화'라는 표현을 동원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그 앞에서 일본 총리는 '북 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했다. 자신을 향한 위협을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안보 주도 능력이다. 일본은 가능한데 한국은 왜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국제 정치의 패권(覇權) 질서에 대한 이해의 깊이 차이다. 패권 시스템 속에선 패권 국가와 이해(利害)를 공유하는 면적을 넓혀 패권 국가의 의심을 사지 않을수록 자주(自主) 외교의 공간이 넓어진다. 국제 정치에서 나타나는 '자주의 아이러니'다. 아베의 선배 나카소네(中曾根康弘) 총리는 '일본 열도는 소련 위협을 저지하는 불침(不沈) 항공모함'이라고 말해 일본 국내의 맹렬한 반발을 샀다. 그렇게 레이건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쌓아 대(對)중국·대소련 외교에서 자주 외교의 반경(半徑)을 넓혔다. 사사건건 미국과 각(角)을 세우며 입으로 '자주'를 외친다고 한국의 외교적 재량 범위가 커지는 게 아니다. 그 반대가 현실이다.
미국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한국 결정'이라 하지 않고 '문재인 정권 결정'이라고 불렀다. 이 정권은 그 표현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가. 한국의 유일한 안보 자산인 한·미 동맹을 흔들면서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국익'은 누구의 무슨 이익을 대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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