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 2019년 09월 03일(火)
최근 대학을 정년퇴직한 경제학자 A 씨를 만났다. 그는 “이번에 한국경제에 위기가 온다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국내 환부(患部)의 일대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작은 사례 하나를 덧붙였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기업을 하다 한국으로 본사를 옮긴 절친한 중견기업인이 다시 한국을 떠났단다. 홍콩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기업인은 애국심 하나로 들어왔지만, 국내 ‘복귀’ 기간 내내 세무조사부터 온갖 규제에 시달렸다고 했다. 앞서 만난 이공계 교수 B 씨도 기자에게 “지인이 회사를 외국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우 미안해했다. 하지만 기업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기업의 유턴 후 재(再)탈출이나 탈(脫)한국은 모두 당면한 경제의 구조적 맹점과 현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활력의 실종이다. 고용과 투자의 핵심인 기업에 대한 유인력과 효과는 씨가 말랐다. 이로 인한 분기, 월별 경제지표의 심각성은 그 자체가 지뢰밭, 뇌관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2.2%인데 더욱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외국 기관들은 1% 비관론에 오히려 힘을 싣고 있다. 1분기 -0.4%로 역성장을 해 충격을 안긴 실물경제는 2분기에 1.1%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정부가 재정을 총동원한 결과물일 뿐이다. 경제의 3대 버팀목인 투자, 소비, 수출도 중병(重病)이다. 민간투자는 5분기 연속 마이너스로 2000년 이후 가장 긴 부진의 터널에 진입했다. 기업들은 돈을 풀 상황이나 여유가 없고 효과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외치·내치를 가릴 것 없이 정부 발(發) 불확실성이 확산하다 보니 보수경영으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 모든 현상은 연구·개발(R&D) 부진과 세대교체에 실패한 산업경쟁력, 첩첩한 덩어리 규제의 덫, 대기업을 터부시하면서도 수직 상승 욕망의 대상으로는 맹렬하게 선호하는 이율배반적이면서도 고질적인 반기업 정서로 인해 우리 내부의 경쟁력이 쇠잔해진 결과다. 이러다 보니 미·중 무역전쟁, 일본 경제보복 같은 외풍만 닥치면 걷잡을 수 없이 휘둘린다.
정부가 대일 경제보복 극복 방안의 하나로 부품소재 기업의 유턴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허상을 좇아서는 안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상황에서 뒷북으로 일관하는 데다, 의지마저 명확지 않으니 신뢰는 점점 떨어진다. 기업, 경제단체가 목을 놓아 지원의 필요성을 주창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련 법안인 유턴 기업 지원법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규제로 묶어 놓은 비수도권 지역으로의 복귀 기업 혜택 확대, 세금감면 적용, 고용규제 완화, 연구·개발 네트워크 구축처럼 제시해온 대안도 늘 뒷전이었다. 기업들이 쉽게 유턴정책에 관심을 두겠는가. 유턴은커녕 지금 이 순간에도 짐을 싸 베트남, 동남아 등지로 뛰쳐나가지 않는 게 다행 아닐까. 선진 경쟁국이 부지런히 규제를 걷어내고 법인세를 내려주며 기업을 우대하는 사이 한국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법인세를 올려 경영 압박을 가중시키면서 열심히 포괄적인 배임죄의 올가미를 씌우는 데 혈안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성찰부터 할 일이다.
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
최근 대학을 정년퇴직한 경제학자 A 씨를 만났다. 그는 “이번에 한국경제에 위기가 온다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국내 환부(患部)의 일대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작은 사례 하나를 덧붙였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기업을 하다 한국으로 본사를 옮긴 절친한 중견기업인이 다시 한국을 떠났단다. 홍콩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기업인은 애국심 하나로 들어왔지만, 국내 ‘복귀’ 기간 내내 세무조사부터 온갖 규제에 시달렸다고 했다. 앞서 만난 이공계 교수 B 씨도 기자에게 “지인이 회사를 외국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우 미안해했다. 하지만 기업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기업의 유턴 후 재(再)탈출이나 탈(脫)한국은 모두 당면한 경제의 구조적 맹점과 현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활력의 실종이다. 고용과 투자의 핵심인 기업에 대한 유인력과 효과는 씨가 말랐다. 이로 인한 분기, 월별 경제지표의 심각성은 그 자체가 지뢰밭, 뇌관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2.2%인데 더욱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외국 기관들은 1% 비관론에 오히려 힘을 싣고 있다. 1분기 -0.4%로 역성장을 해 충격을 안긴 실물경제는 2분기에 1.1%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정부가 재정을 총동원한 결과물일 뿐이다. 경제의 3대 버팀목인 투자, 소비, 수출도 중병(重病)이다. 민간투자는 5분기 연속 마이너스로 2000년 이후 가장 긴 부진의 터널에 진입했다. 기업들은 돈을 풀 상황이나 여유가 없고 효과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외치·내치를 가릴 것 없이 정부 발(發) 불확실성이 확산하다 보니 보수경영으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 모든 현상은 연구·개발(R&D) 부진과 세대교체에 실패한 산업경쟁력, 첩첩한 덩어리 규제의 덫, 대기업을 터부시하면서도 수직 상승 욕망의 대상으로는 맹렬하게 선호하는 이율배반적이면서도 고질적인 반기업 정서로 인해 우리 내부의 경쟁력이 쇠잔해진 결과다. 이러다 보니 미·중 무역전쟁, 일본 경제보복 같은 외풍만 닥치면 걷잡을 수 없이 휘둘린다.
정부가 대일 경제보복 극복 방안의 하나로 부품소재 기업의 유턴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허상을 좇아서는 안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상황에서 뒷북으로 일관하는 데다, 의지마저 명확지 않으니 신뢰는 점점 떨어진다. 기업, 경제단체가 목을 놓아 지원의 필요성을 주창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련 법안인 유턴 기업 지원법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규제로 묶어 놓은 비수도권 지역으로의 복귀 기업 혜택 확대, 세금감면 적용, 고용규제 완화, 연구·개발 네트워크 구축처럼 제시해온 대안도 늘 뒷전이었다. 기업들이 쉽게 유턴정책에 관심을 두겠는가. 유턴은커녕 지금 이 순간에도 짐을 싸 베트남, 동남아 등지로 뛰쳐나가지 않는 게 다행 아닐까. 선진 경쟁국이 부지런히 규제를 걷어내고 법인세를 내려주며 기업을 우대하는 사이 한국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법인세를 올려 경영 압박을 가중시키면서 열심히 포괄적인 배임죄의 올가미를 씌우는 데 혈안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성찰부터 할 일이다.
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지는 ‘조국 지명 철회’ 목소리…교수 200명 시국선언 (0) | 2019.09.06 |
---|---|
[양상훈 칼럼] '조국 지명은 우리 사회에 불행 중 다행' (0) | 2019.09.05 |
[최보식이 만난 사람] "惡魔는 조롱 못 견뎌… 우리의 조롱으로 '전대협 586'은 사라질 것" (0) | 2019.09.02 |
[朝鮮칼럼 The Column] 386세대 운동권, 그만하면 충분히 권력 누렸다 (0) | 2019.09.02 |
[송민순의 한반도평화워치] 강 건너려면 기존 다리 허물기 전 새 다리 놓아야 (0) | 2019.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