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우의 간신열전] [3] 왕과 민심 사이.. 똬리 튼 간신

바람아님 2019. 10. 31. 09:15
조선일보 2019.10.30. 03:09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수나라 양제(煬帝·569~618년)는 재위 14년 만에 아버지 문제(文帝)가 어렵사리 통일한 나라를 말아먹은 황제다. 중국의 정사(正史)가 전해주는 그의 말년으로 들어가 보자.


잦은 토목공사와 대규모 정벌로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트려 놓고 정작 자신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적 무리들이 일어나고 반란의 움직임이 다투어 확산됐다. 오늘날로 치자면 피폐한 삶에 지친 민초 내 반(反)정부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양제는 이에 관해 정확히 보고하는 것을 싫어했다.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대간(大奸) 조고(趙高)와 쌍벽을 이루는 간신 우세기(虞世基·?~616년)는 그런 양제의 속마음을 읽어냈다.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모두 차단한 채 이렇게 말했다. "좀도둑들이어서 군과 현에서 장차 섬멸할 것이니 폐하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도적과 반란군의 기세는 강해져만 갔다. 양제가 실상을 알아차릴 기회는 있었다.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적도 있는 대장군 양의신(楊義臣)이 하북(河北)의 도적 수십만을 격파하고 승전 보고를 올렸다. 양제는 물었다. "양의신이 항복시킨 도적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다시 우세기가 말로 덮었다. "좀 많긴 한데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양의신이 도적을 물리친 이후에도 현재 적지 않은 군대를 거느리고 오래도록 지방에 머물러 있으니 안 될 일입니다." 양제는 우세기의 말에 이끌려 양의신을 중앙 조정으로 불러들이고 그의 군대를 해산시켜 버렸다. 곧바로 수나라는 망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데 군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측근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지금 우리 저잣거리에선 기업들과 상인, 서민들이 못 살겠다고 난리다. 귀를 조금만 열어도 하늘을 찌르는 그 원성을 쉽게 들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청와대에선 경제가 좋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는 지도자의 책임인가, 간신들의 농간인가.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