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0.23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후한(後漢) 혹은 동한(東漢) 말기의 대표적 간신 양기(梁冀·?~159년)는 누이동생이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면서 권세를 휘두르며 나라 안팎의 미움을 샀다.
144년 순제가 붕(崩)하자 두 살의 충제(沖帝)가 즉위했고 이에 누이가 태후가 돼 섭정을 하자
양기(梁冀)도 권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충제가 병으로 붕하자 병권을 쥐고 있던 대신
이고(李固)는 외척 견제를 위해 연장자 즉위를 건의했으나 양기(梁冀)는 여덟 살 질제(質帝)를
즉위시켰다. 하지만 양기(梁冀)의 전횡에 질제가 불만을 갖자 그를 독살한 양기(梁冀)는 환제(桓帝)를
추대하고 이고를 죽여 버렸다.
이제 양기(梁冀)의 세상이었다. 황제는 있으나 마나였다.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양기전(梁冀傳)은 그의 사람됨에 대해 "어깨가 솔개와 같이 넓고
눈매가 승냥이와 같았으며 주변을 위압하고 성품이 오만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런 양기(梁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오나라 왕족 출신인 아내 손수(孫壽)였다.
양기(梁冀)가 대저택을 짓자 특이하게 손수도 뒤질세라 비슷한 규모의 대저택을 올렸다.
부부가 사치와 재물 과시 경쟁을 했던 것이다.
손수는 공주(公主)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으며 세상에 못 하는 짓이 없었다. 양기(梁冀)는 아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어
손씨 집안 사람 10여 명에게 각종 벼슬을 내렸다. 부부 간신 혹은 간신 부부의 탄생이다.
몰락은 아내 손수에게서 비롯됐다. 손수의 외삼촌 양기(梁紀)는 아내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鄧猛)을 거두었다.
159년 등맹의 미모를 눈여겨본 손수는 등맹의 성을 양(梁)씨로 바꾸게 하고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 보냈다.
그리고 남편 양기(梁冀)로 하여금 등맹의 생모 선(宣)을 죽이게 했는데, 암살에 실패해 선이 궁중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평소 양기(梁冀) 부부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환제는 환관들과 모의해 군사를 동원해
양기(梁冀)의 집을 포위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자살했다.
범엽은 이 두 사람의 삶을 '파가상국(破家傷國)' 넉 자로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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