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크고 무능한 정부

바람아님 2019. 11. 26. 08:36
문화일보 2019.11.25. 12:10



文정부 공무원 17만 증원 계획
민간 고통 속 공직만 고도비만

민생·안전 강화 주장은 거짓말
세금 부담에다 규제까지 가중

규제 못 견딘 ‘규제 이민’ 속출
대통령의 혁신 독려는 코미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C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 근무하면서 인력 구조 변화에 의문을 품게 됐다. 1914~1928년 사이의 14년 동안 해군 장병은 14만→10만 명으로, 군함은 62→20척으로 줄었는데, 해군본부에 근무하는 공무원 숫자는 2000→3569명으로 78%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점을 바탕으로 연구해 1955년 ‘파킨슨의 법칙’을 발표했다. 공무원의 수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파킨슨의 통찰력이 60년 이상 훌쩍 지나 2019년 한국에서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놓은 공무원 증원 규모는 3만5000명. 올해 3만3000명의 공무원이 늘어 28년래 최대 규모였는데, 이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우는 셈이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은 멀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 총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고려하면, 내년 증원 외에도 임기 종료 전에 7만6000명을 더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 조직만 가장 살판이 났다. 그냥 둬도 자기 증식하는 속성이 있는데, “정부가 최대 고용주가 돼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로 정권 차원의 비호까지 받게 됐으니 말이다. 늘어나는 공무원 17만여 명에게 쏟아야 할 세금(누적 인건비)만 327조 원에 달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민 삶을 책임지는 정부’로서 공공서비스를 늘리고 청년 실업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 앞에 공허하기만 하다.


공무원 대폭 증원은 국가 재정 부담도 문제지만, 경제 현장에서 더 걱정하는 건 규제 악화다. 전통 제조업에 매달려 지탱해온 한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신(新)산업에 명운을 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규제 개혁이 절실한데, 늘어난 공무원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늘어난 공무원들이 밥값을 하겠다며 곳곳에서 자꾸 일거리(규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도장을 쥔 갑(甲·공무원)의 수가 늘면 인허가 절차는 복잡해지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산업 현장 을(乙·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정부는 국민 안전과 민생 현장 중심의 충원이라고 주장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봐도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공무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부처는 공정거래위원회(18.0% 증가)였고, 환경부(17.1%)·금융위원회(11.6%)·고용노동부(10.8%) 등의 순이었다. 모두 기업 규제·감독 부처다. 이 같은 팽창으로 더욱 공고해진 공무원 조직은 이전에 없던 사업을 꿈꾸는 스타트업 운영자들에겐 천적과도 같다. “전례가 없다”거나 “기존 산업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이중·삼중의 규제 잣대를 들이대며 신생 산업의 싹을 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규제장벽이 낮은 외국을 찾아 떠나는 ‘규제이민’이란 말까지 나오겠는가. 생체정보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지인은 자신이 겪은 공무원 조직을 ‘통곡의 벽’으로 비유했다. 국회발(發) 규제가 쏟아지다 보니 국회가 ‘규제의 전당’으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많은데, 이 역시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핵심 부분은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 명의만 빌린 ‘청부 입법’이다.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문 대통령은 공무원 조직 확대를 독려하는 동시에 혁신경제와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으니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심화하는 경제난 속에 민간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중인데, 공무원 사회만 고도비만에 빠져 있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돈 벌어 세금 내는 기업은 완장 찬 관(官)의 위세에 눌려 신음하는데,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만 부른 배를 두드리는 국가가 어찌 되는지는 그리스나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에서 똑똑히 봐왔다.


리더의 4개 유형 중 ‘(멍청한데 부지런한)멍부’가 최악이라고 한다. 정부에 가성비 개념을 적용하면 ‘작고 유능한 정부’가 최고이고, 최악은 ‘크고 무능한 정부’일 것이다. 청년 구직자와 국민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공무원 증원에 매진하는 문 정부가 ‘크고 무능한 정부’의 대명사로 역사에 기록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규제 개혁과 혁신경제를 원한다면 말로만 백 번 외치는 것보다 공무원 한 명 줄이는 게 더 긴요하다. 문 정부가 공무원 증원 공약에 집착하면 할수록, 민간경제 현장의 활력은 죽고 기업과 국민 고통만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