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09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로스앤젤레스는 살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건축양식도 다양하다.
그중 다른 도시에 잘 없는 '팝 건축(Pop Architecture)'이라 불리는 건물들이 흥미롭다.
우리에게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팝아트'가 건축에 적용된 사례들이다. 대중적
이미지를 수용하는 예술을 추구했던 팝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크게 유행했다.
뉴욕과 함께 팝아트의 양대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그 명맥이 건축물로 옮겨져 이어졌다.
걸어 다니며 정확한 주소로 건물을 찾는 뉴욕과 달리 대부분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멀리서 잘 보이는 디자인이 중요하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되어 글씨가 써진 간판 대신 판매 상품을 묘사하는
대형 모형이 설치된 것이다.
무대 세트처럼 생긴 엉성한 건축물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근 할리우드의 영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건물은 1953년 세워진 랜디 도넛(Randy's Donuts).
"프랑스에 크루아상이 있다면 미국에는 도넛이 있다"고 자부하는 수제 도넛 상점이다.
상점 지붕에 설치된 지름 10m의 초대형 간판이 독특하여 영화 '화성침공'과 '아이언맨 2'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공항 근처에 위치하여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창밖을 내려다보며 로스앤젤레스와 인사하는 아이콘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업주의 디자인을 '쓰레기 건축'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미적 평가도 양분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미국 도넛의 수도(首都)라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의
1500개가 넘는 도넛 가게 중에서, 아니 미국 전역에서 이보다 유명한 도넛 가게 건물은 없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도넛 가게도 이곳밖에 없다.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이미지는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이민자들도 무슨 가게인지 알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올드패션에 대한 향수는 유행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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