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02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극장을 뜻하는 '시어터(Theatre)'는 '보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래서 보는 장소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연극이다.
연극의 발생지 그리스는 원형극장의 건축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그리스의 원형극장들은 건축적 자태도 아름답지만, 그 좌석의 배치가 특히 의미 있다.
무대와 가까운 아래쪽에는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다.
평평한 돌바닥으로 된 일반석과 다르게 좌석마다 개인용 의자가 돌로 조각되어 있다.
이 특별한 좌석의 한편엔 아군의 장군들, 반대편에는 전쟁 고아들이 앉는다.
적국의 사절과 장군들도 초대된다.
무대와 객석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로 안내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좌석 배치를 지켜보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싸우다 죽어도 나라는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고 잘 보살펴 준다"는 메시지가 그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된다.
오늘날 그리스의 원형극장들은 본토는 물론, 이탈리아, 터키, 요르단 등에 골고루 퍼져 보존되어 있다.
경이로운 점은 극장이 위치한 장소다.
산 중턱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평원을 내려다보거나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등의 절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극 관람 중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지켜보기 위한 방어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이 있다. 하지만 이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자연보다 더 위대하다.
연극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는 메시지다.
많은 원형극장은 신전과도 가깝게 세워져 있다. 연극에 신도 초대하기 위해서다.
공연을 통해서 신을 기쁘게 해 주고, 또 우리의 인생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완벽 빼놓고는 모든 걸 다 갖추었다"는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의 이야기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리스 연극, 특히 아테네 연극의 위대한 점은 관객들이 지적으로 영감을 받을 준비를 하고 공연에 참석한다는 점이다.
지적 향연과 배움은 이들 삶의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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