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2.26. 03:12
공원이나 광장의 한적한 주변 자리,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배치되어 있는 벤치는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과 사색의 여유를 제공해 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벤치에 앉아 있는 즐거움이다. 의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반해 벤치는 나누는 공간이다. 친구나 애인, 동료와 같이 앉는 것은 보통이고,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이 옆에 앉을 가능성을 열어 둔다. 벤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초콜릿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고 곁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곳도 벤치였다.
북유럽 국가들에서의 벤치는 '휘게(hygge)'라고 알려진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한다. 도시나 시골 곳곳에 벤치가 놓여 사람을 초대한다. 지나가는 보행자들을 위해서 집 앞의 정원에 벤치를 마련해주는 경우도 흔하다〈사진〉. 벤치의 매력은 땅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 땅과 가까이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은 값지다.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몸이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도 든다. 원할 때마다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삶의 질은 높다. 기부를 할 때 상징적으로 벤치를 만들어 이름을 새기는 것도 그곳에 앉는 사람들의 좋은 삶을 바라는 의미다.
벤치라는 단어는 스포츠에서도 사용된다. 명감독들은 '벤치 스코어'를 잘 만든다. 경기를 보며 앉아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백 가지의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벤치의 휴식이 좋은 것은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한 작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리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벤치와 함께하는 최고의 순간은 앉아 있는 동안이 아닌 일어나는 때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코트로 뛰어들어 갈 때,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했을 때 벤치와 이별한다. 내일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긍정하기 위한 순간이다. 이것이 벤치의 매직이다. 서양에서는 벤치가 나오는 꿈을 꾸면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 모두 잘 해결된다는 예시라고 한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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