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큰 나무를 뿌리째 뽑은 자리에 반드시 다시 큰 나무가 자라나듯, 지배 세력을 뽑아낸 지방에도 결국 새로운 지배 세력이 피어난다. 개봉에 자리 잡은 ‘중앙’의 입장에선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중앙이 영원히 중앙으로 남아 지방의 어깨 위에 서 있기 위해서는 지방을 장악한 호족들을 계속해서 수도 개봉으로 불러들여야만 했다.
송나라의 두 번째 황제가 된 태종(太宗·939∼997)이 전면적으로 확장한 과거(科擧)제도는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주는 듯했다. 태종은 당나라 때 33명에 불과했던 과거 등용 인재를 3년에 1400명 정도로 대폭 늘려 뽑았다. 이로 인한 지방과 수도의 인적 교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총 3차 시험으로 진행됐는데, 개봉에서 열리는 2차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1차 시험 합격자 수가 적게는 5000여 명에서 많게는 2만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 같은 송나라 조정의 노력에도 지방 세력의 불만을 쉽게 잠재우진 못했다. 과거제도의 지방 통제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합격자 지역 할당제가 필수적인데 송나라 조정은 이 지점에서 망설였다. 1차 시험의 경우 철저히 할당제를 적용했지만 2차 시험은 출신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시험 성적만으로 당락을 결정했다. 문제는 지역별로 경제적, 문화적 인프라 차이가 컸다는 데 있다. 송나라 시대를 기점으로 강남(남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 강북(북중국)을 압도하게 된다. 강남 출신 호족들은 높은 경제력에 힘입어 풍부한 문화 자본을 축적하고 질 좋은 교육 인프라를 구축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2차 시험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송나라가 건국한 지 채 100년이 되기도 전에 이러한 지역 간 불균형은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현저해져 특히 큰 손해를 본 강북 출신들이 2차 시험 지역 쿼터제 도입을 주장하게 됐다. 위대한 사학자이자 정치인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강북을 대표해 나서 강남을 대표하는 대문호 구양수(歐陽脩·1007∼1072)와 이 문제로 일대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조정은 결국 강남의 손을 들어줬다.
정치인 선발 시험을 강남 출신이 점차 장악해가는 상황에서 강북 각 지역의 지배 세력은 조정에 ‘목소리’를 전달할 인적 통로를 잃었다. 북중국 출신의 인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송나라 조정이 야속하기만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정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을 갖기란 어렵다. 같은 동네 출신들이 과거시험에 쭉쭉 합격해서 고관대작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연락해서 목소리를 전달하기라도 할 텐데, 그런 통로가 없으니 몇 번의 과격한 호소만으로도 반란군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12세기 초, 여진족이 침입해 북중국을 비교적 손쉽게 장악하고 금나라(金·1115∼1234)를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지역에 대한 송나라의 인적·정서적 지배력이 약했다는 현실이 있다.
침묵이 좋아 침묵하는 이는 드물다. 차를 몰고 국회로, 기업으로, 대사관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종종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도 있다. 회의실에서, 강의실에서, 내무실에서, 거실에서, 술자리에서 사흘째 아무 말도 않는 이가 있다면 그를 잘 살펴보자. 말을 전할 통로가 막힌 송나라의 강북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발언권을 줘보자. 여진족의 공격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강북 사람들과 달리 당신과 함께 맞서 싸워줄지도 모른다.
이 원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88호에 실린 ‘말 않는 이 있다면, 발언권부터 줘 보라’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안동섭 중국 후난(湖南)대 악록서원 조교수 dongsob.ahn@univ.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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