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29 허윤희 기자)
中서 30만명이 찾은 추사展,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개막
"글자·획 해체해 재구성한 파격… 20세기 현대 추상 미술과 직통"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글씨에 대해
미술사학자인 근원 김용준은 이렇게 감탄했다. 우리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게 아니었나 보다.
지난여름, 추사가 1809년 연행(燕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지 210년 만에 추사 작품 117점이 처음 중국에서 공개되자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하루 평균 5000명, 두 달간 관람객 30만명이 다녀갔다.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선 그림이다.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 추상과 직통한다"고 했고,
서예가 황진핑(黃金平)은 "병풍 한 폭, 글자 한 자마다 고풍스러움과 소박함, 균형을 깬 듯하면서 다시 화합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했다.
'글로벌 추사'로 거듭나게 한 베이징 특별전이 금의환향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18일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는 지난해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린 동명(同名) 전시의 귀국전이다.
추사의 현판·대련·두루마리·병풍·서첩 등 대표작과 함께 추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품까지
120여점을 선보인다.
추사의 ‘유희삼매’. 천진하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조각가 김종영이 소장했던 ‘완당집고첩’에 수록된 글씨다. 18×414㎝. /예술의전당
'계산무진(谿山無盡·계산은 끝이 없구나)'과 '유희삼매(遊戱三昧·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는 글자 배치부터 파격적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
스물셋에 부친을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가서 최신 학문에 눈을 뜬 추사는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등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며 역대 서법을 익혔고, 귀국 후 평생 이를 갈고닦아 추사체라는 독보적 서체를 완성했다.
추사 스스로 밝혔듯 "열 개의 벼루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앤" 노력의 산물이 바로 추사체다.
베이징 전시가 추사와 중국 석학들의 교류를 통해 '필묵공동체' 동아시아를 강조했다면,
이번 전시는 추사 글씨의 현대성에 방점을 찍었다.
전시장 말미에 김종영, 윤형근 등 추사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가들의 조각·회화를 함께 전시했다.
한국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삼매'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큐레이터는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를 '모든 구속을 벗어난 절대자유'로 해석했다"며
"글자와 획을 해체해 재구성하고 공간을 처리한 파격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3월 15일까지.
사대부에 조롱당했던 추사의 글씨···중국선 30만명이 몰렸다 (중앙일보 2020.01.17 유성운 기자) | ||
.굵고 단조롭게 느껴지는가 하면, 또 구불구불하고 길게 흘러내리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면 느끼는 첫 인상이다. 미술계에선 높게 평가받는 추사의 글씨라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땐 한석봉이 쓴 ‘예쁜’ 서체가 더 빛나보일 법하다. 현대인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사대부들의 비난과 조롱에 시달린 추사는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마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하니 당대에도 파격성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던 모양이다. 추사 김정희 초상 [중앙포토]
집중적으로 조명한 무대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동명의 전시전의 귀국전 형식이다. 중국에서 열린 전시전은 3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추사의 ‘괴(怪)의 미학(美學)’과 현대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전시전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 현대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김종영, 윤형근 등 추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제작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추사 전시전을 찾은 중국인 관객 [사진 중국미술관] .추사의 작품이 현대미술에 영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사의 예술정신은 현대의 추상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단언했다. “추사 역시 정(正)과 괴(怪)에 대한 개념을 전복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기존 동아시아에서 바라보는 서(書)에 대한 관념을 뒤집은 것”이라며 “서양 현대미술이 점, 선, 면이라면 추사의 세계는 점, 획, 면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칠불게첩'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탁본을 즐겼던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의 정체를 처음으로 밝힌 학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고고학자적인 면모는 중국 청나라에서 발흥했던 고증학의 영향이다. 20대 중반 부친을 따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던 추사는 청나라에서 꽃피웠던 고증학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고증학은 성리학과 달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보다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우선시하는 학풍으로 문헌학이나 언어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탁본 역시 고증학의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널리 유행했던 분야다. 추사 김정희가 쓴 '도덕신선'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고증학에 빠졌던 추사는 탁본 등을 통해 한나라 시대에 쓰인 예서체에 크게 주목했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추사가 탐구했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글자도 예서체에서 행서체로 바뀌는 과도기의 필체라고 한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한나라는 종이가 발명되면서 기존에 칼이나 도구로 찍거나 새기던 글씨에서 붓으로 쓰는 글씨로 본격적으로 전환된 시대”라며 “추사는 서체의 시작점이었던 예서체를 통해 새로운 예술 경지로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치 피카소가 아프리카 예술품의 원시성에서 영감을 얻어 큐비즘을 만든 것처럼 추사 역시 서체의 기원을 통해 미추(美醜)를 넘어선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을 지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2월 13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열려 한ㆍ중 학자들이 추사의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 추사 김정희의 명품 서예작품과 그 시대 교유했던 청조 문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는 전시 전시기간 : 2020.01.18 - 03.15 |
<예술의 전당에서 같이 볼 수 있는 전시> [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특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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