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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사스 때 평성시 호텔에 15일 격리됐다 주민들은 '떼돈 벌 기회'라며 반겼다

바람아님 2020. 2. 9. 13:08

(조선일보 2020.02.08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사스 때 평성시 호텔에 15일 격리됐다 주민들은 '떼돈 벌 기회'라며 반겼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에 빠졌다.

북한 언론들은 일절 보도하지 않다가 1월 24일에야 '노동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알렸다.

그나마도 "신형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의 북한식 표기) 감염자가 미국과 일본에서 발생했는데 중국 우한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보도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북한 주민 입장에선 바이러스 발생지가 중국인지 미국, 일본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폐렴 발생지도 중국이고 대부분 확진자도 중국에 있으나 첫 감염자들이 미국인과 일본인처럼 보도한 것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미국과 일본이 미운 것이다.


사스 때 평성시 호텔에 15일 격리됐다 주민들은 '떼돈 벌 기회'라며 반겼다
일러스트= 안병현


초기 대응은 남한이 빨랐지만 사태가 장기화되자 북한은 아예 해외 항공, 철도, 해상 운수를 잠정 중단했다.

입국하는 모든 해외 여행자를 지방 호텔에 집단 격리시켜 놓고 거의 한 달 동안 의무 의료 관찰을 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얼마 전에는 북한 상주 외교관들의 호텔, 상점, 식당, 시장 이용을 중단시켰다.

공관 구역 내 외교관 상점만 이용하라고 지시했다.


주민에게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으라고 선전하지만 노동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니 병원이나 마을 진료소에서

주민을 모아 놓고 진행하는 강연회에서 의사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만큼 마스크 양이 부족하다.

손을 자주 씻으라고 선전하지만 전기 사정이 열악해 수돗물은 정해진 시간에만 나온다.

의사도 환자를 치료한 후 흐르는 수돗물에 손을 씻지 못하고 치료실에 있는 플라스틱 대야에 받아 놓은 물로 씻는다.

환자를 치료한 후 같은 물에 계속 손을 씻으니 오히려 감염 경로가 될 수 있다.


처음 우리 정부가 전세기로 데려오는 우한 교민을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격리시키겠다고 발표하자 현지 주민이 완강히 반발했다. 북한은 반대다.

2003년 사스 발생 당시 북한 주민들은 자기 지역 호텔이 격리 시설로 결정되자 대단히 반겼다.

떼돈 벌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도 평양 비행장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평성시 장수산 호텔에 격리되어 보름 동안 의무 의료 관찰을 받았다.

당국에서 호텔 숙박비와 식비는 부담해 주었으나 한 끼 식사라고 해야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반찬 한두 가지 정도였다.

추가로 요리를 주문하면 '합의제 가격'(손님과 식당이 합의하여 정하는 가격)이 적용되는데 비쌀 수밖에 없다.

호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니 낮에는 온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고 저녁에는 잠이 오지 않아 술추렴(여러 사람이

술값을 분담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매일 고기, 채소, 맥주를 실은 차량이 호텔 구내로 드나들었다.

호텔 담 너머에는 격리자들을 위한 책 장사꾼들까지 나타났다.

당국에서는 격리자들에게 방과 식당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고 했으나 호텔 내 식당, 바, 노래방, 탁구장, 당구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격리자들로 붐볐다. 돈이 떨어진 사람들은 집에 연락해 돈을 보내오게 했다.

새로 입소한 사람과 퇴소를 앞둔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격리란 결국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북한 당국은 해외 입국자들은 철저히 격리시켰다고 선전하며 사회적 불안감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이번 폐렴과 관련한 북한 당국의 방역 조치들은 이전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

완전 국경 폐쇄나 극단적인 격리 조치들이 외부에서 보면 이상할 정도지만 북한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지금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얼어 있어 북·중 국경 밀수가 제일 활발한 때다.

하루에도 수백명이 배낭에 밀수품을 넣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든다.


사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남과 북은 하나의 권역이나 다름없다.

열악한 의료 보건 시스템 속에 사는 북한 주민에게 마스크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