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영화 '백두산'을 보고 생각했다 김정일 고향 집이 거기 있는데…

바람아님 2020. 2. 6. 23:45

(조선일보 2020.02.01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영화 '백두산'을 보고 생각했다 김정일 고향 집이 거기 있는데…


남북 관계는 점점 얼어붙고 있는데 문화계에서는 남북이 합심해 한반도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의 작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백두산'이다.


국제 학계에선 백두산 아래에 양이 어마어마한 마그마가 있다고 한다.

중국 언론은 2002년부터 백두산 주변에서 지진 활동이 늘어났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었다.

중국 정부에서 백두산 주변에 화산 관측소도 설치했다.


중국이 부산을 떨자 김정일도 놀라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 지질학계의 장비가 너무 열악해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다.

중국이 연구 자료를 북한과 공유하지 않자 북한 당국은 영국학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영국 지질학회에서는 화산학자인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와 제임스 해먼드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교수를 북한으로 보냈다.

영화 '백두산'에서는 강봉래(마동석) 교수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나오지만 현실에선 영국 교수들이 담당한 셈이다.


영국 교수들은 백두산에 광대역 지진계를 설치하고 장기간 체류하면서 땅속 움직임을 관측하고 땅을 파내

백두산의 지질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북한 당국은 안 된다고 했다.

외국인의 지방 장기 체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 규정인데, 그것도 평양과 멀리 떨어진

최북단 백두산 산간벽지에서 영국인이 연구를 목적으로 장기 체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한 보위성(한국의 국정원 격) 내부 경고도 있었다.

함경북도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불과 130㎞ 떨어진 백두산에 지진계를 세워놓고 자료를 수집하려는 데에는

핵실험 시 폭발 규모를 측정하려는 미국 의도가 깔렸을 수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화산 연구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던 이때 영국 교수를 초청한 대외 문화 연락위원회에서 김정일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백두산 화산이 재폭발하면 백두산 지구에 있는 김정일 고향 집과 김일성 항일 혁명 전적지가 화산재에 덮일 수 있으니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화들짝 놀란 김정일은 연구진에게 적극 협조하라고 명령했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우상화 교육 시설이 위험해진다면서 조사를 한다는 데 막아설 기관은 없었다.

백두산 화산 연구 사업 목적이 혁명 전통 보전으로 바뀌니 과잉 충성 경쟁이 벌어졌다.

영국 연구진이 체류할 마을에서는 혁명 전적지 보호 사업을 위해 외국에서까지 연구자들이 왔다고 떠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미국과 영국이 태클을 걸었다.

영화에서 미국과 중국이 방해하는 것과 똑 닮았다.

영국 과학자들이 광대역 지진계를 북한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니 영국 당국이 제지했다.

지진계가 '와세나 협정' 대상 항목이라는 것이었다. 와세나 협정이란 공산권 국가들에 재래식 무기와

전략 물자 및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다자간 협의체인데 사실상 목줄은 미국이 쥐고 있다.


나는 영국 외무부에 찾아가 평화적인 과학 연구 사업에 왜 와세나 협정을 적용하느냐고 항의했다.

난처해진 영국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주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미국과 영국은 몇 달 협의 끝에 결국 지진계 반출을 허가했다.

평양에선 영국 교수들이 CIA 첩자일 수 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예고 없이 교수 연구실에 찾아갔다.

발 들여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책이 가득했다.

함께 복도를 걸어 봤는데 지나가던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CIA 요원은 아닌 것 같았다.


최근 정부에서 남북 민간 교류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밑에 백두산과 연결되는 마그마층이 있는데 북한이 이 마그마층을 자극해

백두산이 잔뜩 화가 나있다고 한다.

2017년 있었던 6차 핵실험 규모의 지하 핵실험을 한 번만 더 하면 백두산 마그마가 '화염과 분노'를 내뿜어

한반도가 멸망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도 있다.

북한 당국이 영화 '백두산'을 빨리 보고 백두산 화산을 막을 방법을 남과 북이 함께 찾을 수 있게 문을 열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