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1.29 박두식 논설위원)
1~2년 전만 해도 세계가 '21세기는 아시아 시대' 전망… 지금은 그런 얘기 사라져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기자는 1990년대 후반부 5년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그 시절 최고의 한류 스타는 박찬호와 박세리였다. 미국 내 교민들도 박찬호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박세리 선수의 샷 하나에 웃고 울곤 했다. IMF 외환 위기를 전후한 시점이어서 더욱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 같다. 당시 박찬호 선수가 속했던 LA 다저스에는 또 한 명의 아시아 출신 스타 투수가 있었다. 일본인 노모 히데오였다. 박 선수가 한국인의 미국 프로야구(MLB) 도전의 문을 열었다면, 노모 역시 일본인에겐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노모가 박찬호 선수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둘은 좋든 싫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적어도 '토종(土種) 한국인'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노모의 불행을 대놓고 좋아하긴 어려워도 속으론 싫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협한 발상은 한인 2세들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적잖은 한인 2세들이 박찬호도 응원하고, 노모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같은 아시아 사람'을 응원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되물었다. 실제 상당수 한인 2세들이 다른 인종(人種)보다 아시안계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려서부터 백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주류 사회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부모 세대의 기대와 달리 한인 2세들은 아시안계와 친구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때의 경험은 아시아 각국도 언젠가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유럽연합(EU) 같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했다. 지난 세기(世紀) 전반부에 아시아 전체를 살육(殺戮)과 광란으로 몰아갔던 일본의 과거와 관련된 문제도 결국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풀리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 꿈을 접어야 할 듯싶다.
일본 집권 세력은 지금껏 일본 교과서가 후대에게 '자학(自虐)의 역사'를 가르쳐 왔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일제(日帝) 침략사를 '자랑스러운 과거'로 미화한 교과서를 보고 배운 일본의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이웃 나라들과 '아시아의 꿈'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 한국과 중국은 또 이런 일본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먼 과거의 일처럼 들리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아시아 시대'는 곧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졌다. 세계의 석학, 각국 주요 연구 기관, 언론, 정·재계 인사들이 앞다퉈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들 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 위기 이후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세계가 아시아 시대를 이야기할 때 그 중심축은 한·중·일 3국이 자리 잡고 있는 동북아다. 경제 규모에서 세계 2위의 중국, 3위 일본, 무역 규모 8위의 한국까지 이 세 나라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는다. 지구상에서 이 정도로 부(富)가 집중된 지역은 북미 대륙과 서유럽, 동북아 세 곳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시아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세계의 관심은 중·일 갈등으로 옮아갔다. 중국 외교부는 얼마 전 아베가 일·중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하자 "중국은 아베 총리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상대국 정상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 인물)'로 지목한 셈이다. 심지어 중·일 대사들은 공개적으로 상대방을 '악의 세력'에 비유하고 있다. 이런 외교 무례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의 동북아 상황이다. 아베는 한 술 더 떠서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 지금의 중·일 관계를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독일과 같다고 했다. 아시아 시대는 한낱 신기루였던 모양이다.
중·일이 지금 벌이고 있는 외교 전쟁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요약하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각국이 중·일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쏟아낼 선물을 기대하고 있다"며 "유일한 예외가 한국"이라고 했다. 일본과 과거사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만 중국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경계하던 서구 입장에선 중·일 갈등을 말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올해는 19세기 말 이 땅에서 중·일 전쟁이 발발한 지 120년, 1차 대전에서 2차 대전으로까지 이어진 30년 전쟁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중·일 3국 지도자가 아시아를 파괴와 공멸(共滅)의 길로 이끌고 있다. 결국 이것이 '아시아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노모가 박찬호 선수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둘은 좋든 싫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적어도 '토종(土種) 한국인'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노모의 불행을 대놓고 좋아하긴 어려워도 속으론 싫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협한 발상은 한인 2세들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적잖은 한인 2세들이 박찬호도 응원하고, 노모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같은 아시아 사람'을 응원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되물었다. 실제 상당수 한인 2세들이 다른 인종(人種)보다 아시안계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려서부터 백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주류 사회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부모 세대의 기대와 달리 한인 2세들은 아시안계와 친구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때의 경험은 아시아 각국도 언젠가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유럽연합(EU) 같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했다. 지난 세기(世紀) 전반부에 아시아 전체를 살육(殺戮)과 광란으로 몰아갔던 일본의 과거와 관련된 문제도 결국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풀리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 꿈을 접어야 할 듯싶다.
일본 집권 세력은 지금껏 일본 교과서가 후대에게 '자학(自虐)의 역사'를 가르쳐 왔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일제(日帝) 침략사를 '자랑스러운 과거'로 미화한 교과서를 보고 배운 일본의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이웃 나라들과 '아시아의 꿈'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 한국과 중국은 또 이런 일본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먼 과거의 일처럼 들리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아시아 시대'는 곧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졌다. 세계의 석학, 각국 주요 연구 기관, 언론, 정·재계 인사들이 앞다퉈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들 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 위기 이후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세계가 아시아 시대를 이야기할 때 그 중심축은 한·중·일 3국이 자리 잡고 있는 동북아다. 경제 규모에서 세계 2위의 중국, 3위 일본, 무역 규모 8위의 한국까지 이 세 나라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는다. 지구상에서 이 정도로 부(富)가 집중된 지역은 북미 대륙과 서유럽, 동북아 세 곳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시아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세계의 관심은 중·일 갈등으로 옮아갔다. 중국 외교부는 얼마 전 아베가 일·중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하자 "중국은 아베 총리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상대국 정상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 인물)'로 지목한 셈이다. 심지어 중·일 대사들은 공개적으로 상대방을 '악의 세력'에 비유하고 있다. 이런 외교 무례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의 동북아 상황이다. 아베는 한 술 더 떠서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 지금의 중·일 관계를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독일과 같다고 했다. 아시아 시대는 한낱 신기루였던 모양이다.
중·일이 지금 벌이고 있는 외교 전쟁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요약하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각국이 중·일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쏟아낼 선물을 기대하고 있다"며 "유일한 예외가 한국"이라고 했다. 일본과 과거사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만 중국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경계하던 서구 입장에선 중·일 갈등을 말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올해는 19세기 말 이 땅에서 중·일 전쟁이 발발한 지 120년, 1차 대전에서 2차 대전으로까지 이어진 30년 전쟁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중·일 3국 지도자가 아시아를 파괴와 공멸(共滅)의 길로 이끌고 있다. 결국 이것이 '아시아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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