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정경원의 디자인노트 [10] 잡스도 심취했던 '단순함'의 元祖

바람아님 2014. 1. 30. 17:46

(출처-조선일보 2012.05.21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우하우스를 알아야 한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국립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도모하려는 
혁신적인 조형예술대학이었다. 건축에 대량 생산 방식을 도입하려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가 독일 중앙 정부 
지원으로 초대 학장이 되었다. 그로피우스는 훌륭한 건축가를 양성하고자 '기초 조형(6개월)→나무·유리·금속 등 재료별 
공작(3년)→건축(3년)'을 교육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불황 등으로 중앙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1925년 데사우 시로 옮긴 학교는 '시립 바우하우스'가 되었다.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교사(校舍)는 공업적인 구조와 조형미의 조화를 도모한 바우하우의 정신을 잘 나타내준다. 
이 무렵부터 우수 졸업생들이 교수로 참여하여 공산품 디자인 개발을 위한 산학 협력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전성기를 맞았다.

'바우하우스 제2기 데사우 교사' - 발터 그로피우스, 1926년. 제2
차 세계대전으로 일부 파괴되어 1976년에 재건축,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바우하우스 제2기 데사우 교사' - 발터 그로피우스, 1926년. 제2 차 세계대전
으로 일부 파괴되어 1976년에 재건축,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하지만 1928년 2대 학장이 된 한네스 마이어는 건축의 본질은 심미성과 민중에 대한 봉사라고 주장하여 시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1930년에 사임했다. 온건한 미스 반데 로에가 3대 학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시 정부와 관계가 호전되지 못해, 1933년 베를린으로 옮겨 사립학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치 세력이 바우하우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대인 교수 축출, 교과과정 수정, 교수들의 공무원 신분 취득 등을 강요했다. 이에 교수진은 학교 해산을 결정하고 해외로 이주했는데, 그로피우스는 하버드, 로에는 일리노이 공대, 조셉 알버스는 예일대의 교수가 되었다.

불과 14년 동안 3개 도시를 전전하던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합목적성, 단순함, 완벽한 마무리 등은 현대 디자인의 원리로 자리 잡아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애플스티브 잡스도 바우하우스 이념에 심취되어 디자인의 단순함을 추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