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3.1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참판 문근(文瑾·1471~?)이 형관(刑官)으로 오래 있었다. 하루는 자백의 허위와 진실을 시험해 보려고 집안 사람들에게 "닭 둥우리의 알을 가져가면 형벌을 더하리라" 하고는 몰래 몇 개를 빼내 감췄다. 그러고는 집안의 손버릇 나쁜 계집종에게 계란을 훔쳐갔다고 뒤집어씌워 맵게 매질을 했다. 견디다 못한 계집종이 자기가 그 계란을 삶아 먹었다고 실토했다. 참판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후손이 끊어지겠구나. 10년간 형벌 맡은 관리로 있으면서 죄를 자백한 자가 어찌 모두 진실이겠는가? 이 계집종과 한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 때문인 줄 알았는데 매질의 힘이었다. '효빈잡기(效顰雜記)'에 보인다.
국정원의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미리 상황에 맞춰 증거를 조작해서 진실을 왜곡했다. 국가의 체모를 다 갉아먹고 그간의 애쓴 보람마저 모두 의심의 눈길을 받게 만들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른바 '덮으려다 더욱 드러나는' 욕개미창(欲蓋彌彰)의 꼬락서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부당해도 좋은가? 매질이나 돈으로는 진실을 못 가린다. 덮어 가리려 들수록 점점 더 또렷해진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한시 - 잊혀지는 것(詠忘) (0) | 2014.04.02 |
---|---|
정민의 世說新語 [252] 등고자비(登高自卑) (0) | 2014.04.02 |
가슴으로 읽는 한시 - 꽃씨 (0) | 2014.04.01 |
정민의 世說新語 [254] 오형오락(五刑五樂) (0) | 2014.03.31 |
정민의 세설신어 [255] 노인삼반 (老人三反) (0) | 2014.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