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2023. 9. 2. 00:04
바구니를 든 사진 속 처녀처럼, 그도 사진기를 들고 성큼성큼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처녀보다 먼저 맞춤한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달음질쳤을지도 모른다. 키 큰 미루나무 혹은 양버드나무 우듬지가 잘리지 않게, 처녀가 달려가는 방향의 끝에서 처녀를 반겨줄 수 있도록 초가집들은 화면 오른쪽에 유순하게 모아두었다. 이윽고 처녀가 논두렁길 가운데 도달함으로써 화면의 중앙에 안착했을 때, ‘철컥’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느 날, 필름도 아니고 한 번에 수십 컷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디지털은 더더욱 아니고, 유리로 된 건판 한 장을 갈아 끼워야 한 컷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였다.
‘논길의 처녀’로 불리는 위 사진은 무허가 직접 만든 네 권의 수제 책 속에 고이 담겨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오늘날 사진가들이 사진집 출판이나 전시를 앞두고 만드는 일종의 ‘더미북(dummybook)’을 이미 그 시대에 만든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902000430843
[사진의 기억] 그 걸음, 더 멀리 널리
[연관기사]
https://v.daum.net/v/20230630080503518
100년전 빛바랜 논길, 새로 찍은 듯 ‘밀착본 복원’
한겨레 2023. 6. 30. 08:05 수정 2023. 6. 30. 08:50
[작품의 운명]
한국 최초 사진예술가 정해창의 100년 묵은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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