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11. 15. 03:04 수정 2023. 11. 15. 06:22
⑭경제개발 계획 수립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는 말이 나오기 반 세기 전부터 이승만은 시장경제 신봉자였다. 그가 경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895년에 발간한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바깥세상의 상업과 교역을 알게 된 일이었다. 그 뒤로 세계 경제를, 특히 발전하고 융성하는 미국 경제를 공부하고 관찰하면서 그는 자신의 경제관을 세웠다.
1945년 6월 미국에서 그가 주도한 ‘대한민주당’이 창립되었다. 이 정당의 정책 가운데 하나는 “국제 통상을 장려함”이었다. 당시는 온 세계가 전쟁에 휩싸인 때였고, 나라마다 자급자족 경제(autarky)를 추구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과 그의 동지들은 국제 통상의 근본적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만든 마지막 경제 계획은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인데, 총량적 목표와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이 모범적 경제개발 계획은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추진한 경제개발 계획의 바탕이 되었다.
이 대통령은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인천에 좋은 공대를 세우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와이에 설립해서 운영했던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한 대금을 대학 설립의 종잣돈으로 삼았다......대학 이름은 인천의 인(仁)자와 하와이의 하(荷)에서 따서 인하공과대학(IIT)이라 지었다.
그가 처음 공대 설립을 밝히자, 미국 대사관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비웃었다. 치열한 전쟁을 하느라 생존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웬 공대냐는 얘기였다. 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1958년엔 인하공대와 서울공대에 원자력학과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듬해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시험용 원자로를 설치하려는 계획에 선행하는 조치였다. 그 뒤 일은 우리가 잘 아는 역사다.
https://v.daum.net/v/20231115030417404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시장경제 씨뿌린 통상·산업정책… 박정희 경제개발 계획으로 이어져
원자로 기공식 첫 삽 -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 2호' 기공식(1959)에서 첫 삽을 뜨는 이승만.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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