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4. 3. 23. 00:12
[97. 클로드 모네]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했다.
하늘이 차츰 노랗게 보였다. 수풀 또한 점점 불그스름한 모습을 띠었다. 있지도 않은 안개가 떠다니는 듯도 했다. 1912년 어느 날, 이러한 이상함을 느낀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볐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붓을 놓고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눈은 계속 불편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아예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모네는 결국 안과를 찾았다. "내 눈이 왜 이렇소?" 의사에게 물었다. 약만 며칠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바랐지만, 의사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모네 선생님.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오?" 의사의 말에 놀란 모네가 바로 응수했다. "정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르셨어요?" 의사는 한숨을 쉰 후 말을 덧붙였다. "백내장이에요. 이미 꽤 심각한 단계까지 왔어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혹시 무언가 어긋나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면? 모네의 걱정은 기우로 볼 수 없었다. 실제로 당시 백내장 수술은 실명 위험이 컸다. 백내장이란 투명해야 할 눈 안쪽 수정체가 하얗게 변하는 병을 말한다.
실명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모네는 수술을 차일피일 미뤘다. 희끄무레한 장애물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는 동안 눈은 더욱 악화하고 있었다. 가령 1899년, 모네가 병을 인지하기 전 그린 〈수련과 일본식 다리〉를 보면 당시 그가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알 수 있다. 눈앞 펼쳐진 그의 지베르니 정원이 무척 아름다웠기에,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술을 미루며 살던 1922년께 그린 〈일본식 다리〉에선 그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같은 이가 그렸다곤 단박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말 다리와 수련을 그린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언뜻 보면 캔버스에 붉은색 물감을 난도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자체가 불타오르는 듯도 하다.
https://v.daum.net/v/202403230012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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