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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독립기념관장 추천위원장 “이종찬이 밀었던 2명, 너무 준비 부족”

바람아님 2024. 8. 15. 09:29

조선일보  2024. 8. 15. 05:15

“김진 면접 때 이종찬 불참 강요?
李회장이 스스로 빠지겠다고 해
김정명 면접땐 李회장 직접 참여
李, 나를 위원장 추천해놓고 고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친일 뉴라이트’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14일 독립기념관장 추천 과정의 불법성을 본격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이승만 대통령을 치켜세우고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전락시키려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관장 추천이 불법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자기가 독립기념관장 후보로 추천한 독립 유공자 자손에 대해 독립기념관장 임원추천위원회가 면접 심사를 기피하라고 부당하게 압박했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독립기념관 이사회는 지난 5월 새 관장을 선정하기 위해 임원추천위를 구성했다. 이후 추천위는 6월 5일 1차 회의에서 오영섭 이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7월 4일 응모자 10명을 서류 심사한 뒤 면접 대상자 5명을 추렸다. 그리고 7월 16일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3명을 보훈부에 추천했다. 지난 5일 강정애 보훈부 장관이 점수가 가장 높았던 김형석씨 임용을 제청하자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다.

이번 임원추천위는 이 회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됐고 이 회장은 모든 추천위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김진(백범 김구 선생 장손자) 광복회 부회장과 광복군 후손인 김정명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후보로 추천했는데 두 사람은 서류 심사는 통과했으나 점수가 낮아 최종 3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임원추천위원장이었던 오영섭 독립기념관 이사는 “선임 절차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이 회장에게 기피를 강요한 적도 없다”고 했다. 오 이사는 “이 회장 추천 인사들이 탈락한 건 오로지 점수 때문”이라며 “면접이 끝난 뒤 위원들이 한결같이 ‘너무 준비가 안 된 분들’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광복회는 지난 13일 오 이사를 위계에 의한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오 이사는 “추천위를 구성할 때 나를 위원장으로 추천한 사람이 이 회장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이 추천한 2명이 탈락한 이유에 대해 오 이사는 “김진 부회장은 실무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며.... “면접에 앞서 모든 후보에게 5분 발언 기회를 줬는데 김진 부회장뿐 아니라 김정명 교수도 ‘내 조상은 독립운동을 훌륭하게 한 분’이라는 말만 했다”며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그는 “보수 성향으로 보기 어려운 추천위원들도 그걸 듣고 실망했더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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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독립기념관장 추천위원장 “이종찬이 밀었던 2명, 너무 준비 부족”

 

[단독] 독립기념관장 추천위원장 “이종찬이 밀었던 2명, 너무 준비 부족”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친일 뉴라이트’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14일 독립기념관장 추천 과정의 불법성을 본격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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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의거 후 첫 신문기록 공개

조선일보  2024. 8. 15. 05:01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1879~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국내 컬렉터인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大野守衛) 친필 원고와 사진 7점 등 일괄 자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營口)에서 영사관보로 근무한 오노 모리에는 1910년 3월 원고지에 친필로 쓴 기록 14장과 의거 ‘몇 분 전 촬영한 하얼빈역’ 사진 등을 남겼다.

안 의사는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의거 직후 러시아 영사관으로 압송돼 밀레르 검사가 신문했고, 이날 오후 10시쯤 안 의사의 신병과 취조 기록 원본을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당시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하얼빈 총영사도 안 의사의 총탄에 맞아 입원했기 때문에 잉커우 영사관에서 오노 모리에가 하얼빈으로 파견됐다.

오노는 10월 27일 오후 하얼빈 총영사관에 도착해 30일 뤼순에서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검사가 와서 신문을 시작하기 전까지 안 의사를 먼저 신문했다. 원고는 이듬해인 1910년 3월 쓴 것으로, ‘큰 별이 지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

자료를 검토한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안 의사는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뤼순 감옥에서도 일본인 간수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면서 “냉철한 지식인 스타일이기보다는 전격적으로 반응하는 행동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했다.

오노 모리에의 기록에는 하얼빈 총영사관의 내부 구조도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하얼빈 제국총영사관은 신시가지 고지대에 있으며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된 멋진 서양식 대가옥”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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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의거 후 첫 신문기록 공개

 

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의거 후 첫 신문기록 공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1879~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국내 컬렉터인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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