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사시장춘’이다. 먼저 그림을 살펴보자.
왼쪽에 배치한 나무는 좁고 길며 검은 가지가 무성하기 짝이 없다. 그 무성한 가지들은 장지문을 가리고 있다.
장지문 앞 좁은 마루에 단정히 놓인 것은 신발 두 켤레다.
왼쪽의 검은 가죽신은 남자의 것이고, 오른쪽의 붉은 가죽신은 여자의 것이다.
오른쪽에는 댕기머리를 드리운 어린 계집종이 쟁반에 술 한 병과 술잔 둘을 들고 방 앞으로 가고 있다.
계집종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낮은 목소리로 “아씨 술 대령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안에서는 “마루에 놓고 가거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시장춘-계곡과 숲은 음모와 성기 상징
눈치 빠른 독자는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왼쪽의 빽빽하고 검은 나뭇가지는, 말하기 무엇하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바, 애써 말하자면 그것은 남자의 음모다.
그렇다면 오른쪽의 계곡과 계곡 위의 숲은? 당연히 여성의 성기다. 좁은 마루 위에 놓인 남자와 여자의 신발은 장지문 건너 남녀가
이제 막 사랑의 행위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집종이 가져오는 것은 술이고, 두 사람은 술잔에 그 사랑의
묘약을 부어 마신 뒤 환희에 빠질 것이다. 성적 환희는 봄이다.
그래서 장지문 옆의 기둥에 ‘사시장춘(四時長春)’ 곧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늘 봄이라고 써놓았다. 아니 그런가.
이 그림은 신윤복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춘화첩의 맨 첫 장이다.
이제까지 말한 남자, 여자의 이런저런 접촉은 최후에는 필연적으로 성관계로 이어진다.
앞서 춘화를 보는 여자 둘을 그린 그림을 설명하면서 말한 바 있지만,
춘화는 조선후기,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사회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춘화는 조선후기의 성 풍속을 아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이 책에 실린 인간의 성적 행위와 관련된 풍부한 도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정밀한 언어적 묘사도 한 장의 그림만 못하다.
아직 충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알려진 춘화로서 볼 만한 것은 역시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달빛 아래서-자유분방한 개방된 성 그려
이제 김홍도 작으로 알려진 춘화를 하나 더 보자. 그의 작품 ‘달빛 아래서’다.
감상자의 시선은 당연히 그림 왼쪽에 쏠리겠지만 오른쪽을 먼저 보자.
버드나무가 연녹색 잎을 무성하게 드리우며 그림 중앙 하단에서 사선을 그리며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보름달이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초록색 풀밭에 남자와 여자는 자리를 깔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좁고 어두운 방안이 아니다. 버드나무에 걸린 만월이 흰 빛을 무한히 쏟아내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숲 속의 사위가 훤하다. 숲속의 풀밭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라니…. 놀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사랑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성은 인간 남녀의 교섭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자연과 인간의 교섭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는 성적으로 개방된 시대라 하지만, 그 개방은 ‘음침한’ 개방이다. 성은 어두운 밀실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하지 못한 남녀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호텔과 모텔, 여관을 찾는다.
돈을 지불함으로써 겨우 얻어낸 밀폐된 공간에서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반면 김홍도의 그림은 인간이 문명의 이름으로 팽개친 자연 속에서의 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야외에서의 성관계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야외에서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송세림(1479∼?)의 ‘어면순’에 실린 이야기 한 토막을 들어보자.
관서 지방에 비지촌(非指村)이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누에 치는 계절에 뽕을 찾아다니다가 한 부잣집에 몰래 들어갔더니, 뽕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몰래 나무 아래로 들어갔더니, 길게 자란 삼이 빽빽하였고, 그 나무 주위는 평탄하여 사람이 왕래한 흔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곳이 아이들이 와서 노는 곳이겠지 하고, 나무에 올라가 숨어서 뽕잎을 따는 데 열중하였다.
한참 뒤 사내 하나가 바깥에서 헐레벌떡 오더니 곧장 뽕나무 그늘로 들어왔다.
그 사내는 우두커니 서 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서너 차례 휘파람을 불고는 숨을 지키며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나이 스물 쯤 된 아리따운 미녀가 술 한 병에 안주 찬합을 들고 발소리를 죽이며 그 사내놈이 있는 곳으로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먼저 미녀와 그 일을 시작하고 한 바탕 즐거움을 누렸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만, 너무 야하기에 여기서 더 언급할 것은 못된다.
어쨌든 위의 이야기에서 보듯 남자와 여자는 은밀히 만나 뽕나무 아래 삼밭에서 관계를 갖는다.
이뿐이 아니다. 민요에도, 사설시조에도 있다. 전남지방에 전하는 도령타령을 보자.
대명천지 밝은 날에 어느 누가 보아줄까
들어나 가세, 들어나 가세, 삼밭으로 들어나 가세
적은 삼대는 쓰러지고 굵은 삼대 춤을 춘다
삼은 높이 자란다. 숨기에 안성맞춤이다. 삼밭에서 남녀가 일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삼밭에서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설시조가 1728년에 편집된 ‘청구영언’에도 실려 있으니,
대개 조선시대 삼밭과 같은 야외에서 남녀의 성행위가 예사로 여겨졌던 것이다. 어디 작품을 읽어보자.
이르랴 보자, 이르랴 보자, 내 아니 이르랴 네 남진(남편)더러
거짓 것으로 물 긷는 체하고 통일랑 나리와(내려서) 우물 전에 놓고 또아리 벗어 통조지에 걸고
건넌집 작은 김서방을 눈개야 불러내어 두 손목 마주 덤석 쥐고 수군수군 말하다가
삼밭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 하던지 잔 삼은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우우 하더라 하고
내 아니 이르랴 네 남진더러
저 아이 입이 보드러워 거짓말 마라 우리는 마을 지섬이라 실삼 조금 캐더니라
모르는 말이 더러 있지만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덮어두자.
이 작품의 내용인즉 이렇다.
어떤 여자가, 친구가 물 길러 가는 체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김서방을 불러내어 삼밭으로 들어가서 일을 벌인 것을 알고
네 남편에게 일러주겠다고 하자, 그 여자는 그런 말은 네가 지어낸 것이고, 사실은 삼을 조금 캐러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누가 옳은 것인지 그 시비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나는 오직 이 작품에서 자연이 인간의 성적 공간이 되고 있다는 데 흥미를 느낄 뿐이다.
●추억-노년의 성적 욕망 강하게 표현
그림 하나를 더 보자. 김홍도의 것으로 알려진 ‘추억’이라는 작품이다.
초가집이다. 방안에 살림살이라고는 거의 없다.
남자와 여자 둘이 앉아 옷을 벗고 중요한 일을 하기 직전이다.
남자는 머리가 다 벗겨지고 흰 수염이 듬성듬성하다.
여자는 머리를 올리고 옷을 제대로 차려 입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보다시피 둘 다 노인인 것이다. 노인이 된다 한들 성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강렬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노인의 성을 배제하고 노인의 성을 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성적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지배와 폭력, 강요로 나타나지 않는 한 성적 욕망의 존재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그려진 이 그림이야말로 바로 그런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