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세설신어 [111] 척확무색(尺蠖無色)

바람아님 2014. 6. 28. 02:42

(출처-조선일보 2011.06.2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위후(衛侯)가 틀린 말을 하는데도 신하들이 한 입으로 칭송했다. 
자사(子思)가 말했다. 
"위나라가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다. 
일의 옳고 그름은 살피지 않고 자기를 찬양하는 것만 기뻐하니, 이처럼 어두울 수가 있는가? 
이치의 소재는 헤아리지 않고 아첨하여 받아들여지기만을 구하니, 이보다 아첨이 심할 수가 있는가? 
임금은 어둡고 신하는 아첨하면서[君闇臣諂] 백성의 위에 군림한다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위후를 만나자 이렇게 쏘아붙였다. 
"임금께서 자기 말이 옳다고 여기시니, 경대부(卿大夫)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합니다. 
신하들이 다들 훌륭하다고만 하는군요. 
훌륭하다고 하면 순조로워 복이 있고, 잘못이라고 하면 뜻을 거슬러 화가 있기 때문이지요." 
'통감(通鑑)'에 나온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대부들을 불러놓고 잔치를 벌였다. 
경공이 활을 쏘며 으스대느라 손잡이 부분을 떼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들이 모두 멋있다고 난리를 쳤다. 
경공이 한숨을 내쉬더니, 활쏘기를 그만두었다. 마침 현장(弦章)이 들어왔다. 경공이 그를 보며 말했다.
"안자(晏子)가 세상을 뜬 지도 17년이 되었군. 그가 세상을 뜬 뒤로 내 잘못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네. 
내가 잘못해도 다 잘했다고만 한다네." 

현장이 대답했다. 
"신하들이 못나 그렇습니다. 
지혜가 임금의 잘못을 알아차리기에 부족하고, 용기는 임금의 안색을 범하기에 모자랍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 임금이 좋아하면 신하가 입고, 임금이 즐기면 신하들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저 자벌레[尺蠖]를 보십시오. 노란 것을 먹으면 그 몸이 노래지고, 푸른 것을 먹으면 그 몸이 푸르게 됩니다. 
임금께서 혹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셨던 게지요." 
경공이 기뻐하며 현장에게 큰 상을 내렸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보인다.

자벌레는 원래 정해진 색깔이 없다. 먹은 음식의 빛깔에 따라 변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 하기에 달렸다. 윗사람의 그릇된 확신이 아랫사람의 맹목적 침묵을 낳는다. 
지리멸렬, 아옹다옹하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위만 쳐다본다. 야단맞을 때만 잠시 심각한 척하다가, 
돌아가 아랫사람을 똑같이 나무란다. 
까마귀의 암수는 겉모습만 보고는 구분이 어려운 법. 백성의 마음이 다 떠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