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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향연 - 공격형 인간과 수비형 인간

바람아님 2014. 6. 30. 09:31

(출처-조선일보 2014.06.30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연구센터장)

성취형 인간은 성공했을 때 희열, 예방형 인간은 실수 안 해야 안도
지킬 規範 많고 엄격한 우리나라, 수비 본능 강한 예방형 대량생산
성취형 인간이 더 성공하고 행복… 인생 게임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연구센터장 사진1998년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의 미 NBA 결승전. 경기 종료 5.6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고 있던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기념비적인 버저비터(buzzer beater)를 성공시켰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슛 중 하나로 기록된 이 버저비터로 마이클 조던은 여섯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버저비터팀이 3점 이하의 점수로 지고 있거나 비기고 있는 순간에 이기기 위해서, 혹은 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던지는 마지막 슛을 말한다.

그렇다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이 순간에 누구에게 슛을 맡길 것인가? 
단순히 슛 성공률만 높은 선수인가? 아니다. 실패했을 때의 비난과 자책보다 성공했을 때의 희열과 영광을 더 갈망하는 선수에게 맡겨야 한다. 마지막 슛의 기회가 자신에게 올까 봐 감독의 눈을 피하는 선수에게 버저비터를 맡길 수는 없다. 
버저비터형 인간, 즉 공격형 인간은 따로 존재한다. 공격은 골을 넣는 것이 목적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골문을 향해 진격해야 한다. 슈팅 기회가 왔을 때 책임 회피용 패스를 하는 선수는 
공격수로선 자격 미달이다. 반면 수비는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과감한 공격 가담으로 득점을 올리는 전천후 수비수가 있기는 하지만 모름지기 수비수는 상대 골문을 향해 진격하기보다 자신의 영토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공격과 수비의 목표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공격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수비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전자를 '성취형(promotion) 인간', 후자를 '예방형(prevention) 인간'이라고 부른다. 
성취형 인간은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예방형 인간은 실수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취형 인간은 성취·창조·보상이라는 연료로 달리고, 예방형 인간은 절제·규범·안전이라는 연료로 달린다. 
성취형 인간은 성공했을 때 희열을 경험하지만, 예방형 인간은 실수하지 않았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어느 게임에서건 이기려면 골을 넣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게임도 그렇다. 성공과 행복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성취형 인간들이 
예방형 인간들보다 성공과 행복에서 우위를 점한다. 물론 예방형 인간에게도 장점이 있다. 예방형 인간은 자기 절제에 능하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서툴지만 일단 일이 시작되면 끝까지 일을 완수해낸다. 규칙적인 생활도 그들의 몫이다.

그런데 어떤 유형의 사람이 한 사회에 많은지는 그 사회의 문화적 특징이 결정한다. 
지켜야 할 규범(規範)이 너무 많은 우리나라와 같은 엄격한 사회는 수비 본능이 강한 예방형 인간을 대량 생산해낸다. 
윗사람은 체면을 지켜야 하고, 아랫사람은 분수를 지켜야 하며, 나라님은 위엄을 지켜야 한다. 
술자리에서는 주도(酒道)를 지켜야 하고, 차 마실 때는 다도(茶道)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수비 본능이 강화된다. 
그 결과 우리는 자기 절제에 능하고 규범과 예절을 잘 지키는 예의 바른 민족이 되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격에는 서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래·창조·행복과 같은 공격형 가치들을 내세우지만 정작 우리 안에는 수비형 본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자신의 골문을 지키기에 급급한 팀보다 상대 골문을 향해 쉴 새 없이 진격하는 팀이 돋보이는 월드컵 시즌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 임하는 우리 개인들도 수비 위주의 안전한 게임이 아니라 좀 더 공격적인 플레이에 나서야 한다. 
골을 넣지 않으면 비길 수는 있어도 결코 이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