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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바람아님 2014. 7. 1. 18:32

(출처-조선일보 2014.06.06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인간이란 존재는 삶의 맥락(脈絡) 따라 규정되는 것

안 풀리는 문제 접고 침묵의 시간으로 떠나고

'만나는 이, 삶터, 관심' 바꿔 삶을 매끄럽게 하라

<각주1 : 맥락(脈絡)-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
<각주2- 게슈탈트(Gestalt, 형태,形態) :부분이 모여서 된 전체가 아니라, 완전한 구조와 전체성을 지닌 통합된 전체로서의 형상과 상태>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참 잘생겼는데, 머리가 엄청 크고 하체는 많이 짧은 내 후배 김경일 교수는 제주 올레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인지적 변화를 연구했다. 
올레길에서 무엇을 느꼈느냐고 물어보면 당장은 별 대답을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물어보면 대부분 "그동안 꽉 막혀 있던 것이 뻥 하고 뚫렸다"며 "올레길에 무슨 효험이 
있는 듯하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올레길의 그 '효험'을 영국 사회심리학자 월러스(G Wallas)의 '부화(孵化)' 개념으로 설명한다.

'창조적 사고'에 관한 선구적 연구자인 월러스는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결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옳다. 
안 풀리는 문제를 아무리 끌어안고 있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괴롭고 힘들면 무조건 그 문제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단지 며칠 동안 올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바뀐다. 삶의 맥락(脈絡)이 바뀌면 아예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 
그렇게 속 썩이던 아이가 군대에 가면 전혀 다른 인간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내 아들이 그랬다. 면회를 가거나 휴가 때 만나면 
그 의젓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무 자랑스러웠다. 말년 병장 때는 자신의 포상휴가를 어머니가 아프시다며 괴로워하는 
이등병에게 양보했다. 그 기간에 자신은 유격훈련을 받았다. 난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잠시 아내를 의심했다. 나 같은 이기적(利己的) 인간에게 어찌 저런 이타적(利他的) 아들이 가능할까 해서다.

그러나 제대하니 이건 말짱 '도루묵'이다. 아주 게으르고 '드~럽다'. 군대 가기 전의 내 아들로 완벽하게 다시 돌아왔다. 
얼굴 마주칠 때마다 아주 환장한다. 그렇다면 군대에 있던 그 의젓하고 폼 나는 아들이 진짜인가, 아니면 이 게으르고 '드~러운' 아들이 진짜인가?

둘 다 진짜다. 존재란 항상 자신이 속한 맥락(脈絡)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는 맥락(脈絡)에 관한 설명은 '텍스트(text)'를 '콘텍스트(context)'와의 관계로 설명하려는 해석학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맥락(脈絡)의 의미가 인문·사회과학의 본격 탐구 영역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다. 
바흐친의 대화주의, 사회학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게슈탈트 심리학,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적 인지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이론들에 따르면 주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脈絡)은 단지 주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 요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맥락(脈絡) 자체가 주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맥락적(脈絡) 주체(主體)'를 전제해야만 문화가 어떻게 내면화되어 
인간 의식의 일부분이 되고, 그다음 세대로 전승될 수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맥락(脈絡)을 구체적인 심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形態)'로 파악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전경(前景·Vordergrund)'이 되고, 그 나머지는 '배경(背景·Hintergrund)'이 된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인물만 뚜렷하게 나오게 하고 나머지 부분을 흐리게 흘려보내는 셀카의 '아웃포커싱'과 같은 원리다. 
문제는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정운의 감언이설, 아니면 말고]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김정운 그림
게슈탈트(形態) 심리학적 원리심리 치료에 응용한 게슈탈트(形態) 치료법에 따르면 
삶이란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어떤 부분이 관심의 초점이 되어 전경이 되면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맥락(脈絡)이 바뀌면 지금까지의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배경이었던 부분이 전경으로 올라온다. 
이렇게 게슈탈트(形態)의 끊임없는 형성과 해소의 과정이 내 삶의 '서사(narrative)'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전경과 배경의 전환이 매끄럽지 않을 때다. 
배경으로 물러나야 할 전경이 계속 버티고, 전경으로 올라와야 할 배경이 애매할 때다. 
내 삶의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다. 맥락(脈絡)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게슈탈트(形態) 형성이 뒤엉켜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참으로 힘들어진다. 자신만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한다.

남을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직업을 가졌던 이들이 은퇴하면 대부분 이렇게 된다. 
고위 공무원, 교수, 회사 임원, 장군, 정치인과 같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삶의 맥락이 바뀌어 자신의 존재가 바뀐 것을 도무지 의식하지 못한다. 맨날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삶의 게슈탈트(形態) 형성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삶의 게슈탈트(形態)를 바꾸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거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동창회·등산 모임 같은 것은 아주 쥐약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삶의 게슈탈트(形態)가 건강해진다. 
둘째,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 지내 보니 진짜 그렇다. 
요즘 난 내 아들보다 더 게으르고 '드~럽게' 산다. 제대한 그 녀석이 내 아들이 확실한 거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긍정적인 게슈탈트(形態) 전환이다. 
세 가지 중에서 관심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심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삶의 장소도 바뀌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 스스로 게슈탈트(形態)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
스스로 안 되면 남에 의해 억지로 바뀌게 된다. 아, 세상에 그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