蓼寓雜律 공주 우거에서
富貴曾思力(부귀증사력) 부귀를 이뤄보려 꿈도 꾸면서
少時未信天(소시미신천) 젊을 적엔 운명을 믿지 않았지.
事何多背意(사하다배의) 하는 일마다 어찌 그리 뜻과 다른지
人已向衰年(인이향쇠년) 몸은 벌써 나이 든 축에 들어가누나.
聽木臨風岸(청목임풍안)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잎 스치는 소리도 듣고
觀身坐石泉(관신좌석천) 개울가에 다가앉아 물 위에 뜬 얼굴도 살펴본다.
白衣飄野逝(백의표야서) 도포 자락 휘날리며 들판을 가는 이
遙認孟生員(요인맹생원) 멀리서도 맹 생원인 줄 바로 알겠네.
18세기의 시인 서명인(徐命寅·1725~1802)이
1763년 잠깐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무료하게 지내려니 밑도 끝도 없이 온갖 생각이
일어난다. 지금은 포기했으나 한때는 부귀를
쟁취하겠다고 애쓴 적도 있고, 운명을 믿지 않고
덤빈 적도 있다.
그러나 뜻대로 된 일 하나 없이 이제 곧 40줄이다.
발길 가는 대로 언덕에 올라 잎새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보고, 개울가에 앉아 얼굴을
뜯어보기도 한다. 그 순간 흰 도포 자락 펄럭이며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보인다.
맹 생원이다. 저리 가는 것을 보면 좋은 일이
있어 들뜬 기분일까?
그는 아직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