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1940∼)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하늘의 창을 열고
흰 불꽃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 획
또는
봄밤을 밝혀 지새우고는
그 쏟아낸 혈흔(血痕)들을 지워가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
설악(雪嶽)의 물소리
오오 꺾어봤으면
그것들처럼 한 번
짐승스럽게 꺾어봤으면
이 무딘 사랑의
붓대
여기서 절필은 붓을 놓아 글쓰기를 그만둔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절세(絶世)의 글, ‘세상에 비할 것 없을 만큼 썩 빼어난’ ‘절대(絶代)’의 시를 뜻할 수도 있겠다.
만개한 벚꽃이 일순간 화르르 지며 흩날리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설악의 물소리’, 그러한 것이 아름다움의 절정(絶頂)이라고 시인은 느낀다. 아름다움은 꺾이는 순간 극대화된다고. ‘오오 꺾어봤으면/그것들처럼 한 번/짐승스럽게 꺾어봤으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꺾어보고 싶다고 시인은 열망하지만, 아름다움을 꺾어 그 극치를 재현할 수 없는 제 언어의 무력함에 절망한다. 절망(絶望)이라니… 또 절(絶)이다. 꺾임으로써 열망도 아름다운가! 칼칼한 시어로 버무린 절필의 맛!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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