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이한우의 태평로] 2014년 10월의 自畵像, '탐·이·나'

바람아님 2014. 10. 12. 18:35

(출처-조선일보 2014.10.09 이한우 문화부장)


이한우 문화부장 사진7일자 조선일보 1면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를 탐욕(貪慾), 이기(利己), 나태(懶怠) 
여섯 글자로 요약했다. 선사(船社)는 돈벌이에만 눈이 먼 탐욕을, 선원들은 저만 살자는 이기를, 
해경은 나 몰라라 하는 나태를 부려 그 큰 참사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동안 말해 왔던 '진실'에 대한 검찰의 답변인지 모른다. 
상식적인 감각으로 봐도 그것이 아마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 주장은 제쳐놓더라도 검찰이 밝혀낸 진실만 놓고 볼 때 
과연 우리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아낼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은 다 절제 속에 있었는데 선사만 유독 탐욕스러웠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이타(利他)의 삶을 살고 있는데 선원들만 유독 이기주의자였을까? 
다른 공무원들은 모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사고 당시 출동한 해경만 유독 나태함을 부렸는가?

사건 후 반년 가까이 온 사회가 진통을 겪었지만 도대체 뭘 얼마나 바꿨는가? 아니 바꿔보려고 몸부림쳤는가? 
'탐(욕), 이(기), 나(태)', 이 세 가지를 잣대 삼아 지난 반년을 돌아보자. 국회가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희생자들은 충분히 
추모하지도 못한 채 탐욕과 이기, 나태가 집약됐던 기구가 국회다. 과연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가 국회만큼 노골적으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나태한가? 정부·기업·언론 등도 '탐·이·나' 중에서 한두 가지는 피해가지 못하겠지만 국회처럼 
세 가지 모두를 두텁게 골고루 갖춘 분야를 찾기는 힘들다. 기업이 탐욕을 부리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적어도 우리 기업들은 
나태하지는 않다. 우리 언론이 이기적이거나 나태할 때도 있지만 탐욕스럽지는 않다.

원인은 찾았는데 해법이 없다면 그것이 곧 암(癌)이다. 
탐욕, 이기, 나태가 온 세상에 훤히 드러났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망연자실, 우리들 각자 안에 있는 '탐·이·나'를 짚어볼 뿐이다.

물론 해결의 방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좀 더 반(反)탐욕적이고 반(反)이기적이고 반(反)나태한 쪽으로 돌려세우는 데 힘을 쏟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실리(失利)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남 탓은 할지언정 제 탓은 하지 않겠다는 이 바위 같은 고집을 풀지 않고서는 또 다른 재앙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우리 검찰은 사고의 원인을 탐욕·이기·나태라고 짚어냈지만 실은 한 가지다. 공(公)의 실종이다. 
떼거리로 하는 '공(共)'은 넘쳐나는데 자기의 헌신을 기반으로 하는 '공(公)'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2014년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현주소다.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 함께 같은 땅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내팽개친 우리 사회에서 공(公)을 찾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있다면 공(公)의 가면을 쓴 공(共)뿐이다. 
공(共)은 서로 다른 공(共)과 어울리며[和] 함께하려 할 때 공(公)이 된다.

앞으로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련을 겪어야 우리의 공(共)은 공(公)이 될 것인가? 
솔직히 지난 6개월만 놓고 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