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0.16 양상훈 논설주간)
조직 이기주의 빠진 국내 일부 연구 기관
美의 잘못된 요구 수용하게 만들 위험…
에너지산업 싹 잘리고 기한 없는 족쇄 찬다
현재 협상 막바지 단계라는 한·미원자력협정은 지금 알려진 대로 서명된다면 후손에게 족쇄를 채우게 된다.
핵심 쟁점은 ①원전 연료의 안정적 확보(우라늄 저농축)
②사용 후 연료의 안전한 재처리와 보관
③원전 수출이다.
현행 한·미 협정엔 ②③만 규제돼 있는데 미국은 새 협정에서 ①까지 발을 묶으려 하고 있다.
이번 새 협정도 미국 뜻대로 굳어지면 앞으로는 내용을 바꾸기 더 어려워진다.
지금 시대에 핵 주권 운운은 의미도 없고 옳지도 않다.
문제는 우리가 세계 에너지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싹이 잘리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엔 원자력산업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겼고, 오래 전에 일본과도 농축·재처리를 모두 허용하는 협정을 맺었다.
한국에 대해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IAEA가 보장한 원전 연료 생산, 사용 후 연료 재처리 권한을 봉쇄하려고 한다.
과거 한국에서 핵폭탄 제조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0여년 전 일이다.
이제 완전히 개방된 정치에다 외국 투자의 3분의 1만 빠져도 금융시장이 붕괴하는 한국이 어떻게 핵폭탄을 만드나.
불가능하다는 걸 미국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러는 배후엔 원자력 대외 협상권을 독점한 이른 바 '(핵)비(非)확산 마피아'가 있다.
이들은 미 정부 내에서도 배타적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자 같은 스타일로 대외 권력을 휘두른다.
특히 미국이 갑(甲) 행세를 할 수 있는 나라들에 비타협적이고 교조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바로 그들이 핵무기를 만들 능력도, 뜻도 없는 한국을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증명할 제물로 삼고 있다.
이들의 횡포는 우방만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실질 국익을 해쳐 왔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미국 원자력산업은 이들에게 휘둘려 에너지가 아니라 비확산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2류국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북한도 하는 원심 분리 방식 우라늄 농축도 못 할 정도다. 원심 분리 공장을 지었으나 가동이 안 된다.
미국 우수 인재들의 원자력 외면이 이어져 앞으로 희망도 없다.
미국이 어디로 가든 우리는 원자력산업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에겐 미국이 가진 석유·가스도 없다.
원전을 수출해야 먹고살 수 있다.
우리가 전기를 쓰고 수출도 하려면 원전 연료를 어떤 국제 정치·경제적 변동과도 관계없이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용 후 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세계 원전 시장을 러시아가 거의 석권하는 것도 이 두 가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원전 연료를 생산하는 주요국 중 하나이고,
거기에 더해 이제는 외국에 지은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전부 자국으로 되가져가 처리하겠다는
테이크백 옵션을 내걸고 있다. 국내법도 완비했다.
이제 중국도 테이크백을 내걸고 수출 시장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에 손발이 다 묶인 한국 원자력산업은 어디에 발을 붙이나.
미국이 언제든 우리에게 원전 연료를 다 대주고 재처리까지 전부 해주겠다면 또 다른 문제지만, 미국은 아무것도 못 한다.
미국산(産)이라는 일부 원전 연료도 실은 유럽이 미국 내에 지어 돌리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원전 연료 시장은 구매자가 갑(甲)이어서 문제가 없지만 언제든 상황이 뒤바뀔 수 있다.
러시아와 같은 공급국이 갑자기 갑 행세를 하고 나올 때 미국은 해결할 능력이 없다.
원전 고준위 폐기물도 미국은 재처리하지 말고 땅에 묻으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그 넓은 미국 땅에도 묻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에선 끊임없이 높은 열이 나온다.
이 열이 우리 후손을 어떤 재앙에 빠트릴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고준위 폐기물을 재처리하면 모두 소멸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의 재처리를 막겠다면 100% 안전이 보장된 다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못하게만 한다. 지금 한국의 원전 건설·운영 능력은 100%다.
기술이 없어 못 만드는 부품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원전 연료 생산 기술은 0%, 재처리 기술은 10% 수준이다.
이런 비상식적 불균형이 생긴 것은 오직 하나, 미국 때문이다.
일반 국민이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일부 연구 기관이 협상의 본말을 전도시켜 지엽적이고 불확실한 사안을 협상 전리품이나 되는 양 선전하려고 한다.
재처리 일종인 파이로 프로세싱의 첫 단계 공정 연구를 미국이 허용했다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미국의 비확산 그룹은 30년째 이 일만 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외교부 대사 한 명과 실무팀,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연구 기관이 상대하고 있다.
미국 측은 한국 협상력의 약점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렇게 흘러갈 수는 없다. 우리는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힘에 지나치게 기죽어 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고, 미국과 한국이 함께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설득할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섣부른 서명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급할 이유가 없다. 역사에 죄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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