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중앙일보 2014-12-5일자]
학교 운동장에 학생들이 열과 줄을 맞춰 섰다. 재학생과 전학생의 싸움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학교였다. 한참을 뜸 들인 뒤 교장이 단상에 섰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을 올려서 부모들이 만족하고 대견해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고 다른 곳에서 느끼게 된다면 탈선이 시작됩니다.” 교장의 훈시는 이어진다. “학생들은 공부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런 운명인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김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조치나 대책이 나올까 궁금했던 기대가 깨지는 소리다. 놀랄 일은 아니다. 교장 선생님의 화법이 늘 그랬으니까. 사달이 났을 때 제일 먼저 한 말도 그랬다. “이번에 학생들이 싸운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학교 기율문란 행위입니다. 전후도 따져보지 않고 싸움을 건다면 학교가 큰 혼란에 빠지고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같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법이 현실에서도 들린다. 저 높은 곳 청와대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화법이다. 이를 두고 ‘유체이탈 화법’ ‘관전평 화법’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딱 교장 선생님의 ‘애국조회 화법’이다. “공직자들은 정책을 잘 펴고 투명하게 돼서 지역민들이 만족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고 다른 곳에서 느끼게 된다면 탈선이 시작됩니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공직자를 학생으로, 국가를 학교로 바꿔도 하나 어색함이 없다. 교장이 학교를 걱정하는 만큼 대통령이 국가를 걱정하는 애국자란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누구의 학생이며, 누구의 공직자인가. 해외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코앞에서 벌어진 비서들의 권력 다툼을 보며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더 큰 문제의 재발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훈시로 학교에서 싸움이 사라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참담 인사(人事)의 맥락이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하나 둘 꿰맞춰지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말이다.
필요한 건 교장의 훈시가 아니라 훈육주임의 따끔한, 담임교사의 책임 있는 화법이다. 훈시는 우리 같은 칼럼니스트에게 맡겨라. 우리도 먹고살자.
이훈범 국제부장
“학생의 본분은 학업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을 올려서 부모들이 만족하고 대견해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고 다른 곳에서 느끼게 된다면 탈선이 시작됩니다.” 교장의 훈시는 이어진다. “학생들은 공부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런 운명인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김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조치나 대책이 나올까 궁금했던 기대가 깨지는 소리다. 놀랄 일은 아니다. 교장 선생님의 화법이 늘 그랬으니까. 사달이 났을 때 제일 먼저 한 말도 그랬다. “이번에 학생들이 싸운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학교 기율문란 행위입니다. 전후도 따져보지 않고 싸움을 건다면 학교가 큰 혼란에 빠지고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같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법이 현실에서도 들린다. 저 높은 곳 청와대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화법이다. 이를 두고 ‘유체이탈 화법’ ‘관전평 화법’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딱 교장 선생님의 ‘애국조회 화법’이다. “공직자들은 정책을 잘 펴고 투명하게 돼서 지역민들이 만족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고 다른 곳에서 느끼게 된다면 탈선이 시작됩니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공직자를 학생으로, 국가를 학교로 바꿔도 하나 어색함이 없다. 교장이 학교를 걱정하는 만큼 대통령이 국가를 걱정하는 애국자란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누구의 학생이며, 누구의 공직자인가. 해외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코앞에서 벌어진 비서들의 권력 다툼을 보며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더 큰 문제의 재발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훈시로 학교에서 싸움이 사라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참담 인사(人事)의 맥락이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하나 둘 꿰맞춰지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말이다.
필요한 건 교장의 훈시가 아니라 훈육주임의 따끔한, 담임교사의 책임 있는 화법이다. 훈시는 우리 같은 칼럼니스트에게 맡겨라. 우리도 먹고살자.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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