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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희망을 찾아서 한발 한발

바람아님 2014. 12. 13. 10:31
서울 도봉구에 사는 67살 신 모 할머니는, 지난 가을 석유와 노끈을 마련하고 머리까지 삭발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장에 다니던 큰아들과, 자신이 소유한 집에서 함께 살던 신 할머니.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생활고에 스스로 생을 등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실직, 사기, 부상…그리고 갈등

지난해 8월에 회사가 어려워져 할머니와 함께 살던 큰아들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지난해 12월 큰 빚을 지게 됩니다.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을 만드는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겁니다. 생활비를 구하던 큰아들은 생활정보지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보내주면 생활자금을 준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단돈 50만 원의 생활자금은, 매달 수십만 원의 핸드폰 요금으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을 알고 은행에 조치를 취했을 때는 이미 천만 원이 넘는 체납요금이 쌓여있었습니다.

신 할머니 집의 유일한 수입은,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기초 노령 연금 2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이 돈은 매달 쓰지도 않은 핸드폰 요금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습니다.

좋지 않은 일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올해 봄, 점심을 얻어먹으러 가까운 절에 나갔던 할머니는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2달이나 앓던 할머니는 5월에야 수술을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큰아들은 우울증과 좌절감에 집을 나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술을 먹고 창문을 깨는 등 다툼도 이어졌습니다. 할머니와 아들은 갈등이 심해져만 갔습니다.

● 견디기 힘든 생활고…어렵사리 뻗은 손

신 할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고혈압을 앓고 있었지만 꾸준히 부업을 하며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용돈을 벌어 왔고, 세금이 나오면 하루도 늦지 않고 그날 바로 달려가 내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실업과 자신의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빈곤은 당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생활고를 겪던 신 할머니는 지난 8월, 주변 사람과 지자체에 도움을 구합니다. 주민센터를 통해 접수된 할머니의 구호 요청은 쌍문동 희망복지센터에 전달됐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복지센터의 통합사례관리사(*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의 가정을 발굴해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을 돕는 역할을 함)가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찬 물에 머리를 감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스는 1년째 끊겨 있었고 냉장고에는 빈 냄비만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냉장고에 전원을 꽂은 지 한참 됐다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오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낯선 호의에 경계심을 보인다는 겁니다.

처음에 아들과 사례관리사가 상담을 하자 할머니는 날카롭게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이웃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안 좋은 소문이 돌까봐, 할머니는 상담할 때마다 부랴부랴 창문들을 닫았습니다. 남의 도움이 처음이라 조심스럽고, 한번 사기를 당해본 경험은 더 타인의 도움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희망센터에서는 긴급히 밀린 가스 요금을 지원하고 매달 30만 원의 '희망온돌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실직과 천만 원이 넘는 빚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 심해지는 아들과의 불화. 할머니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추석 때 둘째 아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할머니는 석유를 마련했습니다. 노끈을 구하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마음먹은 겁니다. 아들이 어머니 잘 살라고 준 돈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생활고와 이로 인한 가정불화, 그에 따른 우울증. 할머니의 생활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희망을 찾아서 한 발짝, 또 한 발짝

통합사례관리사의 끊임없는 방문과 의료 지원으로 할머니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습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지자체와 종교단체의 지원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직업 상담을 하며 구직활동에 나선 아들이 직장을 구한 것입니다.

상담을 받던 아들은 사례관리사에게 왜 이렇게 자신들을 돕는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한순간 어려운 상황에 빠진 거예요.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회복할 것 같아서 돕는 거예요." 큰아들은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며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사례관리사가 얼마 전 "이제 그만 노끈을 달라"고 했더니 "이제는 안 죽는다.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도와주는데 내가 왜 죽나."며 웃어 보이셨다고 합니다.

신 할머니네는 기초생활수급 가정도 아니고 집중 관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지금도 꾸준히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통합사례관리사는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옆에 있는 이웃들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화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