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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 그림 속의 부처

바람아님 2015. 5. 24. 06:13

[중앙일보] 입력 2015.05.23

옛 그림, 불법에 빠지다
조정육 지음, 아트북스
420쪽, 2만2000원


불교에서는 경(經)이란 명칭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붓다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기록한 책만 경전(經典)이라 부른다. 아함경(阿含經)· 화엄경(華嚴經)·법화경(法華經)·반야심경(般若心經)·금강경(金剛經) 등이 그렇다.

 사람들은 왜 경전에 존경을 표하는 걸까. 그건 경(經)에 지혜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상과 우주를 관통하는 눈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똑! 똑! 똑!’하고 그 눈을 노크한다. 붓다의 직설과 일화를 담은 초기경전부터 후대에 등장한 대승경전까지 두루 아우르며, 가슴을 건드리는 한 구절을 뽑아서 내놓는다. 자신의 감상을 에세이로 푼 뒤에, 옛 그림에 대입해 다시 푸는 식이다. 그래서 경전과 저자의 일상과 옛 그림에 담긴 스토리가 장면을 전환하며 맛을 내는 융합의 비빔밥처럼 다가온다.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에 실린 ‘매작도’.

 

 가령 저자는 『밀린다왕문경』에서 ‘약에 의해 병이 나은 것처럼 뛰어난 수행력에 의해 모든 번뇌는 없어지고, 지혜는 사라지지만 깨달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는 대목을 뽑는다. 그리고 자전거를 배운 지 2주째라는 자신의 일상을 들려준다. 아파트 단지의 1동부터 7동까지 자전거로 왔다 갔다 하며 화단의 꽃나무를 서른 번도 더 봐서 기쁘다고 말한다.

 그러다 유독 1동과 7동에만 매화 대신 벚꽃이 심어져 있는 이유를 궁리한다. 도로와 가까워 차량 소음과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려 키 작은 매화 대신 키가 큰 벚꽃을 심은 조경사의 뜻을 알고서야 무릎을 친다. “내가 별것 아닌 것으로 무시하는 것조차 사실은 별것 아닌 것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공안(公案)을 깨달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옛 그림인 김홍도의 ‘매작도(梅鵲圖)’가 이미지와 함께 등장한다. 꽃 핀 매화 나무에 앉은 네 마리 까치의 그림이다. 저자는 “봄날의 절정을 목격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걸작”이라고 그림을 소개한다. 작품을 읽어내는 솜씨가 정갈하고 친절하다. “매화 가지에서 놀던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자 세 마리 까치가 날아가는 까치를 보며 일제히 짖는다. 날개를 쫘악 펼친 까치 덕분에 정적인 공간에 아연 활기가 돈다. 까악까악 짖어대는 까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정선의 ‘사직노송도’를 놓고 유마 거사의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불이(不二)법문’을 푸는 등 다양한 옛 그림이 등장한다. 경전의 바닥을 뚫어내는 눈밝음은 아니다. 대신 잔잔한 일상에서 지혜의 메시지를 하나씩 깨치고, 가꾸어가는 여정이 흐뭇하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