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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산수(飛行山水) ④ 전동성당의 문이 북쪽으로 난 이유

바람아님 2015. 6. 19. 09:23

[중앙일보] 입력 2015.06.13

기린봉에서 전주를 보다

 


말괄량이 삐삐가 빗자루를 타고 친구들에게 전주를 안내하네요.

 저 아래 봐. 기와집 진짜 많다. 구경 온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네. 전주에는 북쪽에 관련된 얘기 둘이 있거든. 하나는 물이야.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싼 도심을 흐르는 전주천은 특이하게도 북으로 빠져나가. 풍수지리에서는 이 고장을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해. 재물 가득 싣고 길 떠나는 배를 잡아둔 형상이란 뜻이지. 여기서는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해. 배에 구멍이 나 돈과 인물이 빠져나가면 큰일이잖아. 평양과 청주도 같은 지형이래. 저 끝에 보이는 들이 ‘징게맹게’야. 김제만경을 여기서 이리 불러. 이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지. 들판 오른쪽에 삼례와 익산이 보이는군. 뒤에 첩첩이 산, 앞에는 끝없는 들, 그 너머에는 차진 갯벌과 서해. 이러니 여기 음식이 숨이 안 넘어가겠어.

 또 하나는 북으로 문을 낸 전동성당이야. 서울 명동성당 공사를 마무리한 푸아넬 신부가 설계했어. 성당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일제가 헐어버린 풍남문 옆 성벽에서 나왔지. 박해받던 시절, 참수당한 많은 천주교인의 머리가 성당 왼쪽에 있는 풍남문에 걸렸다고 해. 성당 정면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야. 성당은 핏빛 역사를 마주하고 선 셈이지. 신념은 칼을 겁내지 않아. 노래 하나 불러 볼까.

 기린의 높은 봉만 구름을 뚫고, 전주천 맑은 물결 구비나린 곳, 역사를 부감하는 노송대 위에~.

 지금은 없어진 전주북중학교 교가야. 오른쪽에 있는 산이 노래 속의 기린봉이야. 왼쪽 끝에 보이는 모악산 발치에 귀신사라는 작은 절이 있어. 대적광전 뒤로 난 계단을 올라가 느티나무 아래 앉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

 어때, 삐삐, 제법이지. 혼자 떠드니 목이 마르네. 삼천동 가서 막걸리 한 사발 할까, 서신동 가서 황태 짝짝 찢어놓고 ‘가맥’을 하든지. 오호호, 내가 뭔 말을 하는 거야. 삼백집이나 현대옥 가서 콩나물국밥 먹자. 풍년제과 초코파이도 물론이지.

글·그림 전주=안충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