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내 이름, 남이 지어준다고?

바람아님 2015. 9. 2. 09:02

(출처-조선일보 2015.09.02 팀 알퍼 칼럼니스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이름이란 게 대체 무슨 소용이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던 중세의 베로나라면 이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2015년의 한국에선 아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돈을 받는 작명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에게 이름이란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나 같은 서양인들은 작명소라고 하면 왠지 산중 암자에서 스님이 가부좌하고 앉아서 명상하면서 
이름을 떠올리는 곳이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스님뿐 아니라 목사나 무당에게 아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봤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이름에 불운이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이름을 쉽게 바꿔버리는 것도 내겐 놀라운 일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건 예외적이다. 
서양에서 자기 이름을 바꾸는 사람은 십중팔구 괴짜다. 내가 아는 이 중에는 축구팀 포츠머스FC의 열성팬이라서 
이름을 아예 '존 포츠머스 풋볼클럽 웨스트우드'로 바꿔버린 사람이 있다. 
자기가 아서왕의 환생이라고 생각해서 이름을 '킹 아서'로 바꾼 사람도 봤다.

영국에선 대개 아이가 태어날 때쯤 유행하는 이름을 붙이곤 한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다. 
영국 사람들은 이름만 말해도 그가 태어난 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내 이름인 '팀'도 태어날 때 유행하던 이름이다. 초등학교 때 반 급우 중에 같은 이름이 7명이나 있었던 적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를 구별해서 부르는 것도 고역이었다.

[일사일언] 내 이름, 남이 지어준다고?
요즘 영국에서 유행하는 이름은 조지와 샬럿이다. 
영국 왕세손인 윌리엄 왕자의 아들과 딸 이름이기 때문이다. 
다섯 살쯤 되는 아이들 중에는 웨인이라는 이름이 많은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를 따라 지은 것이다. 
그땐 웨인 루니가 축구를 참 잘했다. 
돈을 주고 이름을 짓는 한국과 그때그때 유행하는 이름을 붙이는 영국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 
내가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면 다른 방법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