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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③ 좋은 친구를 사귀는 기술

바람아님 2016. 3. 27. 00:00
[중앙일보] 입력 2016.02.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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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나는 서울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내가 처음 배운 말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우정이란 소중한 것이다. 행복과 평화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이 있다. 우선 매일 매 순간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회와 연대하고 남을 돕는 것이다. 이기주의처럼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마지막으로 참다운 우정을 찾는 것이다. 참다운 우정이란 더 나은 인간을 낳는 모태이며,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보배의 하나다.

 얼마 전 KBS의 멋진 프로그램에 우리 가족이 소개된 이후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끔은 보다 깊은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는 그런 만남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이 일부러 짬을 내 나에게 말이라도 걸었을까. 그 누가 장애를 가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친구 삼고 싶을까.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 KBS에 감사드린다. 덕분에 나의 한국인 친구가 나날이 늘어간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았다. 미덕의 단련과 지혜의 실천, 어떤 상황도 이겨내는 정신적 힘이 모여 행복의 길을 열지만 그에 덧붙여 우정이야말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건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우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쾌락을 조건으로 한 우정. 보통 젊은이들 사이의 우정이 그러기 쉽다. 쾌락처럼 덧없는 것이 없기에 그런 우정이 쉬이 식을 수 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둘째는 이득을 배경으로 한 우정. 세네카가 “이득이 없는 곳에 우정은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우정이다. 따지고 보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업적 관계인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정으로 착각하며 사는가.

셋째는 인간의 선의(善意)에 뿌리내린 우정, 내면의 성장을 가능케 해주는 참다운 우정이다. 나는 스위스에 두고 온 친구들과 매일 SNS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 길어야 5분이지만 해 질 무렵 하루의 이모저모를 오순도순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심판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서로의 잘잘못을 나누는 것.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이처럼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다. 장점을 과시해 얻어내거나 돈으로 사는 것은 우정이 아니다. 참다운 우정은 대가 없이 거저 주어진다.

 서울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카페 같은 곳에서 혼자 얼마나 죽치고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눈으로 친근한 표정을 갈구하면서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대화와 의기투합을 꿈꾸었는지! 그 고독한 시간들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하리라는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자기에게 많이 주는 사람의 친구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란 쉽게 꺼낼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이 역동적인 아침의 나라에서 매일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김밥가게에서든 공중목욕탕에서든 왜냐고 묻지 않는 우애와 응원의 메시지가 넘친다. 되돌려 받음을 기대하지 않는, 계산 없는 우정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나는 서울의 거리를 거닐면서 ‘사냥꾼처럼’ 친구를 찾지 않는다.

그 대신 마주치는 모두를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특히 친구가 없어 외로운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갈 마음을 다진다. 외로움은 숙명이 아니다. 언제나 효과 만점 처방이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선량함이다. 남에게 나를 열어 보이는 마음이다!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