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인원의 사진산책] 목욕탕의 은밀한 풍경을 찍기까지

바람아님 2016. 12. 29. 23:39
조선일보 : 2016.12.29 03:05

목욕탕 진솔한 표정 담기 위해 사진가는 손님들과 친해지기로
8개월을 벌거벗고 그들과 지내며 진실한 삶의 순간들 포착해
몰래 사진 찍고 함부로 공유하는 가짜들은 결코 도달 못 할 경지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조인원 멀티미디어
영상부 차장
사진가 손대광(43)은 자신이 살던 부산 광안동의 대중목욕탕인 광민탕을 3년 넘게 촬영했다. 많게는 휴무일 하루만 빼고 매일, 적을 때도 일주일에 서너 번 목욕탕에 가서 남자들 목욕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목욕 값은 2000원. 인근에 최신식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손님들을 빼앗기자 주인이 목욕비를 반값으로 내렸고 그 덕에 매일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광민탕은 올해 7월 폐업했지만 사진가는 찍은 사진들을 추려서 얼마 전 사진집 '광민탕: 다 때가 있다'를 내고 전시회도 열었다.

사진은 청춘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의 늘어진 뱃살과 처진 엉덩이, 주름살과 부황 자국 선명한 알몸들로 가득하다. 은밀한 부위도 잘 안 보인다. 헌데 목욕을 하는 아재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팬티만 입고 바닥에 앉아 로또를 맞춰 보는 남자, 거동 불편한 백발노인을 바닥에 눕히고 때를 미는 남자, 한쪽 다리로 서서 당당하게 샤워하는 장애인, 목욕을 마치고 환하게 웃는 소년. 바닥에 벌렁 누워 체조를 하거나 얼굴을 물속에 담근 손님들 모습도 보인다. 매주 다녔어도 대중목욕탕에 이런 다채로운 풍경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어떻게 카메라를 들고 목욕탕에 들어갔을까?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목욕탕에 들어가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처음엔 목욕과 이발을 마치고 말끔해진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사진을 찍어드렸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단골손님들과 가까워졌고 몇 달이 지나자 목욕하는 모습을 찍어도 될 만큼 친해졌다. 사진가 자신도 매번 옷을 벗고 목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렌즈에 낀 뿌연 습기를 없애려고 카메라를 수건으로 감싸고 목욕탕 환풍기 앞에 두면서 촬영했다. 물기 번들거리는 목욕탕 대리석 바닥과 물 위로 반사된 햇빛 등은 디지털로 촬영됐지만 사진가의 정성스러운 프린트 과정을 통해 흑백의 아날로그 질감으로 살아있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목욕탕의 은밀한 풍경을 찍기까지
/이철원 기자
사진집 부제인 '다 때가 있다'에서 '때'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피부에 쌓이는 노폐물이자 시간이나 시점을 의미한다. 사진가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며 뭔가 '다짐을 한다'고 했다. 그들은 비록 인생의 전성기는 지났더라도 깨끗해지려는 자기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살아갈 좋은 때를 기다린다. 그래서 누구든 목욕탕을 나설 때면 몸과 마음의 때를 벗고 새로운 마음이 된다고 했다.

접근이 어려운 소재를 다룬 다큐사진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양승우(50)가 지난 7월 사진집 '청춘길일(靑春吉日)'을 냈다. 등과 가슴이 용(龍) 문신으로 가득한 조직폭력배, 술집이나 안마업소 등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찍었다. 거침없이 애정표현 하는 남녀, 주먹질하다 피투성이가 된 부랑인 남자, 유흥업소 여성들, 일본 야쿠자 모습 등 영화에서 배우들이 재현해야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사진으로 기록돼 있었다. 사진들은 거칠지만 긴장되고 살아있다.

사진집이 나올 즈음 열린 사진전을 보러 갔다가 양승우를 만났다. 어떻게 이런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는지가 우선 궁금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에 가서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기에 촬영이 가능했다. 그는 사진 속의 사람들과 어울려 힘든 노동을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야쿠자나 조폭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솔직하게 찾아가서 말하고 찍었다. 다른 직업군 사람들도 몇 달 혹은 몇 년을 그곳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함께 일하면서 촬영했다.

요코하마 인력시장을 찍을 때, 처음엔 일만 하고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두 달 정도 지나니까 한 남자가 다가와 "너는 대체 뭘 하는 놈인데 여기 와서 이러느냐?"고 묻길래 그제야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 남자는 다른 사람들까지 소개해주며 사진을 찍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양승우는 무엇을 찍어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과 믿음을 쌓아야 사진도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몰래 와서 몇 장 툭툭 찍고 가버리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고 그는 단언했다.

카메라가 작아지고 화소도 높아지면서 허락 없이 사진 찍고 함부로 공유하는 행태가 판을 친다. 사진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가짜 이미지는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 먼지처럼 사라진다. 거짓은 언제든 드러난다. 자연스러운 사진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대상에 정직하게 다가갈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