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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은 남대문 옆 연못, 南池

바람아님 2013. 10. 25. 09:07
빛바랜 사진과 옛 신문은 세기를 넘어 표석(標石)으로만 남아 있는 남지(南池)의 모습과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하던 이 연못을

아끼던 이들의 정신이 깃든 일화(逸話)를 전한다. 사진 속 남대문 옆 성벽을 따라 늘어선 초가집들은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칠패

(七牌) 저자이고, 왼편 한복 차림 어른과 아이 뒤 연못이 말로만 전해지던 남지다. 연못가 풀들이 아직 시들지 않았고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계절은 아직 찬바람 불기 전이고, 전차가 보이지 않으니 1899년 이전에 찍은 사진이다.


남지의 모습과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는 유일한 사진으로 도쿄 한국연구원 소장이다.

 

1896년 남지에는 고니가 살았다. 그해 4월 14일자와 23일자 '독립신문'은 이 연못에 살게 된 고니의 사연을 연이어 전했다.

'칠패 아침 저자에 고니라는 큰 새를 어떤 사람이 팔러 왔는데 그 동리 사람이 열냥을 주고 사다가 남문 밖 연못에 놓아주니 유적

(幽寂)한 정취가 뭇 새와 달랐다. 이 새가 연못 물과 물고기를 좋아해 날아가지 않고 밤낮으로 논 지 한 달가량 되었다.' 우리

선조는 자연과 더불어 숨 쉴 줄 안 문명인이었다. 미담이 보도된 지 열흘 뒤 '일전에 일본 사람이 강으로 사냥 가는 길에 고니에

총을 놓으려 하거늘 그 근처 순검이 팔을 붙들고 쏘지 못하게 하였다더라'라는 기사가 잘 말해주듯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정신을 지킬 공권력도 살아 있었다.



그러나 고종 황제가 일제의 강박에 못 이겨 양위한 1907년 남대문을 옹위하던 좌우 성벽은 전찻길 복선화로 허물어졌으며

남지도 흙더미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남대문 주위에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루고 너른 도로에 자동차의 물결이 끊이질 않는 오늘,

물고기를 쫓아 고니가 유영하는 남지를 보고 싶은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