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 속도를 사랑한 예술가

바람아님 2013. 12. 19. 11:50

(출처-조선일보 2013.09.04. 명옥·사비나 미술관 관장)


정지된 것에서 속도감 느껴지도록 희미한 선 여러 번 넣어
잔상 표현해 사물이 걷고 있는 듯한 모습 그렸죠

기차 옆에서 뛰어오르는 무용수 역동적 움직임
순간 포착하는 등 속도 강조해 미술에 혁신 표현했어요

프랑스 사상가인 폴 비릴리오"현대사회는 속도를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라고 했어요. 기술문명과 진보의 상징인 속도는 인간의 생각과 삶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속도를 미술에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요.

이탈리아 화가 자코모 발라(Balla)는 여주인과 반려견이 산책하는 장면을 그렸군요〈작품 1〉. 한눈에도 여자와 개가 빠르게 걷고 있다고 느껴져요. 어떻게 정지된 그림에 속도감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검정 드레스 끝자락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두 발과 개의 발놀림, 개 목줄을 살펴보세요. 선을 길게 늘인 데다 여러 번 중첩해 희미하게 표현했네요. 마치 잔상(殘像)을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 거죠. 인간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동작을 멈추고 나서도 그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운동잔상'이라고 하는데, 발라는 착시현상을 그림에 응용해 빠른 속도로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준 거죠.

작품1 - '쇠사슬에 묶인 개의 역동성' 사진
         작품1 - '쇠사슬에 묶인 개의 역동성' 자코모 발라, 1912.

'속도를 그린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영국 출신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Muybridge)와 프랑스의 에티엔 쥘 마레(Marey)가 개발한 동물들의 빠른 움직임을 촬영한 연속 동작 사진에서 얻었어요. 예를 들면 머이브리지는 실로 연결된 12·24·40개 사진기를 차례대로 작동시켜 동물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다음 한 장의 인화지에 연속 동작 사진을 재구성했어요. 그 결과 인간의 눈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동물들의 빠른 움직임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죠. 발라는 이런 실험적인 사진술을 활용해 그림에 속도감을 표현한 겁니다.

이탈리아 화가이며 조각가인 움베르토 보치오니(Boccioni)도 미술에서 속도감을 표현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깬 예술가 중 한 사람입니다. 기계인간이 앞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고 있네요〈작품 2〉. 마치 속도기계처럼 보이는 이 조각상은 보치오니가 창조한 미래형 인간입니다. 보치오니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미술사조인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예요. 미래주의는 과학기술을 숭배한 예술가 집단이 만든 예술운동이었죠.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기술문명의 상징인 기계의 규칙성과 효율성, 힘차게 작동하는 엔진의 리듬을 사랑했어요. 새로운 시대의 아름다움은 속도라고 믿었고, 속도를 미술에 표현하겠다는 목표도 세웠죠. 전쟁을 일삼는 인간에 대한 절망감이 기계 찬양으로 나타난 거죠. 인간과 기계를 결합한 이 조각상은 당시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얼마나 속도에 열광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작품2 -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작품3 - '자전거 경기장에서' 사진
          작품2 -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움베르토 보치오니, 1913(사진 왼쪽). 
                                                  작품3 - '자전거 경기장에서' 장 메챙제, 1912(사진 오른쪽).

속도 숭배는 프랑스 화가 장 메챙제(Metzinger)의 그림에서도 나타나요. '파리-루베(Paris-Roubaix)' 자전거 경주 대회에서 선수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군요〈작품 3〉. 어깨를 둥글게 구부린 선수의 몸동작과 핸들을 잡은 손 모양, 그림 왼쪽에 보이는 또 다른 자전거의 뒷바퀴 살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을 알려주네요. 화가는 빠른 속도감을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두 개의 화면이 겹치는 영화기법인 '오버랩'을 활용했군요. 자전거 선수의 얼굴과 몸에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경주로가 투명하게 비치거든요. 왜 이런 효과를 그림에 적용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나 바람까지도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선수들이 바람과 공기의 저항을 극복하면서 빠르게 경주한다고 느끼도록 말이죠.

작품4 - '시간을 달리는 남자' 사진
                       작품4 - '시간을 달리는 남자' 조던 매터, 2011.

미국의 사진작가인 조던 매터(Matter)는 초고속감을 사진에 표현했네요〈작품 4〉. 붐비는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한 남자가 날아갈 듯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인간 탄환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 소속의 무용수예요. 조던 매터는 트램펄린이나 와이어, 안전장치 없이 무용수들이 달리거나 뛰어오르는 순간 동작을 디지털 보정 과정 없이 찍기로 유명하죠. 어떻게 바람처럼 빠른 속도감을 사진에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남자는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다음은 링컨 센터 역이라고 적힌 기둥은 바닥에 고정된 상태이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시민들도 움직임을 멈췄어요. 기차와 같은 방향과 정지된 상태가 바람처럼 빠른 속도감을 강조하는 거죠.

21세기를 가리켜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지요. 예술가들은 빛의 속도를 어떻게 미술에 표현할까요? 벌써 가슴이 설레네요.



[함께 생각해봐요]

오늘 명작 따라잡기에서는 미술 작품에 표현된 속도를 살펴봤어요. 개의 발놀림과 목줄을 여러 개 겹쳐 그려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 자코모 발라, 자전거를 탄 선수의 몸 너머로 관중의 모습과 경주로가 투명하게 비치듯 그린 장 메챙제 등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속도감을 표현했지요.

여러분이 만약 그림에 속도를 표현한다면 어떤 기법을 사용해 그리고 싶나요? 또 여러분이 표현하고 싶은 속도감이란 어떤 건가요?




(추가 자료)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 최초의 모션픽쳐이자 최초의 타임랩스를 성공시킨 사람입니다. 

1878년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달리는 말을 연속적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합니다. 

아래의 사진이 그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