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농사꾼 도시와 장사꾼 도시

바람아님 2019. 8. 29. 09:05

(조선일보 2019.08.29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서울시, 도로 위에 집 1000채 건설 계획… 좋은 곳 많은데 왜 굳이?
파리 용적률 250%, 서울은 160%… 우린 버려지는 땅 너무 많아
정사각형 서울 땅은 농사꾼, 좁고 긴 필지 파리 등은 장사꾼 마인드
신도시·도로 위 건물 대신 스마트한 도시 고밀화 절실한 시대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일론 머스크'의 미래 비전 중 태양계 행성인 화성을 개발해서 사람을 살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SF 시리즈 '스타트렉'의 팬으로서 광활한 우주를 향해 나가자는 진취적인 생각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인간의 몸으로는 살 수 없는 조건인 우주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노력의 100분의 1만 하면 지금의 지구를 더 살기 좋은 모습으로 회복시킬 텐데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화성을 식민화해봐야 거대한 실내 쇼핑몰 같은 데 들어가 사는 정도일 텐데 그런 데서 정말 살고 싶을까?

그것보다는 지구온난화와 인구 문제를 해결해서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백배는 쉬워 보인다.

서울시가 '도로 위의 공중 도시'라는 이름으로 북부간선도로 500m 구간 위에 청년 가구와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 1000채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거 문제 약자 계층을 위해서 집을 짓는 계획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왜 굳이 도로 위에 지을까? 도로 위에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은 박근혜 정부 때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들을 때마다 멀쩡한 지구를 더 좋게 만들 생각을 안 하고 화성에 가서 살겠다는 계획처럼 들린다.

북부간선도로 위를 개발해서 사람이 살게 해봐야 소음과 먼지, 무엇보다도 진동 때문에 좋은 주거 환경이 되기 힘들다.

예전에 에어컨 실외기 앞에 있는 방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미세한 진동은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서 도로 위 건물은 슬럼화되기 쉽다.

대표적 케이스가 1961년에 '로버트 와그너 주니어' 뉴욕시장이 지은 맨해튼 95번 도로 위의 '브리지 아파트'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중산층 주거 지역이 되지는 못했다. 연구에 의하면 이곳 주민들의 천식 발병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는 프랑스, 독일, 홍콩의 케이스를 들면서 지금은 기술적으로 개선되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라면도 건강에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말처럼 들린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 왜 굳이 도로 위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울시는 일반 사유지에 건물을 지으면 토지 매입비가 많이 들어서 도로 위에 짓는다고 말한다.

비용이 문제라면 차라리 도로 위가 아닌 일반 대지의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서 더 높게 지으면 될 것이다.

개발업자는 못 하지만 서울시는 가능한 일 아닌가. 열린 눈으로 보면 서울에 남는 것이 땅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160% 정도라고 한다. 반면 시내 전체가 저층인 프랑스 파리는 250%이다.

고층건물이 이렇게 많은 서울이 파리보다 용적률이 낮다는데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울시는 자투리 공간으로 버려지는 땅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대지경계선에서 띄워서 건물을 짓는다.

건물 사이를 띄워서 채광·통풍을 하겠다는 이유다. 그래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땅이 건물 사이에 많다.

하지만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는 건물끼리 옆으로 붙어 있다.

대신 빈 공간은 쓸모가 많은 중정이나 뒷마당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필지가 좁고 길게 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필지를 좁고 길게 만든 이유는 도심 속에서 장사하기 위해서다.

장사를 하려면 길가에 면해서 가게 입구가 나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서 장사하면서 사는 도시들은 필지 모양이 도로에 접한 부분은 좁고 뒤쪽으로 길다.

런던, 암스테르담, 로마, 뉴욕 할 것 없이 상업중심 도시는 다 그렇다. 심지어 일본의 오래된 도시도 필지가 좁고 길다.

그런데 우리는 강남 개발을 할 때도 필지 모양이 정사각형이다. 농사꾼의 마인드로 필지 구획을 해서 그렇다.

우리는 땅은 반듯한 정사각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을 볼 때 햇볕 드는 농지와 면적만을 생각해서 그렇다.


농사꾼과 장사꾼의 다른 마인드는 필지 모양을 다르게 했고, 도시의 효율성을 변화시켰다.

우리가 장사꾼의 마인드를 가지지 못한 이유는 온돌로 인해서 2층짜리 집을 지어본 적이 없어서다.

그래서 고밀한 도시도 없었고 상업도 발달하지 못했다.

우리의 도시를 바꾸려면 필지 디자인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의 흔적도 남기면서 새롭게 필지를 디자인할 재개발·재건축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고밀화를 한다면 굳이 도로 위에 건물을 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도시와 도로 위 건물을 짓는 대신 도시를 스마트하게 고밀화할 필요가 절실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