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학교에 테라스 정원을… 당장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방법

바람아님 2019. 8. 30. 18:27

(조선일보 2019.06.06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건 환경이 온통 인공 실내이기 때문
뇌는 원래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 자연서 멀어지자 미디어에 빠져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게임에 중독되는 이유는 게임이 중추신경에 쾌락과 값싼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12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취직에도 몇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게임은 시작부터 결과까지 한 시간 이내에 결정 난다.

게임 속의 모든 경험은 시간을 압축해 놓은 경험들이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다.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뇌가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물처럼 이동하는 생명체는 뇌가 있고 식물처럼 고정된 생명체는 뇌가 없다는 것이다.

말미잘의 경우 유충의 상태에서 바다를 떠다닐 때는 뇌가 있다가 바위에 정착을 하면 뇌가 사라진다.

뇌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기관이다.

인간은 뇌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은 계속 이동하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10만 년 이상의 수렵 채집과 1만 년 가까운 농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왔다.

그러다가 250년 전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일터가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실내 공간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우리의 환경에서 변화하는 요소인 자연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유전적 특징과 현실 환경에 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능의 탄생'의 저자인 이대열 미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능이란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긴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의 뇌에서 처리해 오던 자연환경의 변화가 없어졌다. 뇌는 무언가 정보 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변화인 디지털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변화의 주요소였던 자연이 점점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미디어가 대체하고 있다. 쇼핑몰에 가면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다. 실내 공간만으로 구성된 쇼핑몰에는

자연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극장 상영작이라도 바꿔서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책이라는 미디어도 적극 활용한다. 쇼핑몰에 별마당 도서관을 만들고 각종 대형 서점들을 유치한다.

극장과 서점은 현대사회에서 숲의 대체물이다. 현대사회는 자연의 변화를 미디어의 변화로 대체하는 중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김하경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이 게임과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환경이 인공의 실내 환경만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에는 자연이 없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연이 있는 마당 대신 거실에서 자란다.

골목길 대신 복도에서 놀고, 학교에 가면 교실에 갇혀 지낸다. 방과 후 상가에 있는 학원에 보내지고, 왔다 갔다 이동 시에

승합차에 실려서 다닌다. 이들이 보내는 공간에 자연이라고는 없다.

그러니 이들의 뇌는 변화를 찾아 미디어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의지 박약으로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만든 환경이 아이들을 게임 중독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제는 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학교 건물에 테라스를 만드는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생겨나는 빈 교실을 부숴서 테라스를 만들면 된다.

빈 교실이 없는 학교의 경우에는 옥상을 개방하면 된다.

옥상에서의 안전 문제는 CCTV 카메라와 유리로 된 벽을 설치하면 해결된다.

그럴 여건이 안 되는 학교는 교무실을 꼭대기층으로 옮기면 된다.

교무실이 1층에 있기 때문에 2층의 아이들도 쉬는 시간에 편하게 밖에 나가지 못한다.

1층을 아이들에게 양보해서 아이들이 정원을 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자.

창문의 턱을 부숴서 유리창을 아래까지 내려서 정원이 더 많이 보이게 하자.

유리창을 폴딩 도어로 만들어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문을 열고 꽃 냄새를 맡으면서 공부하게 해주자.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우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너무 교육을 책으로만 하려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변화하는 자연을 돌려줄 때 우리 아이들은 게임과 스마트폰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중독이 병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 게임 업체들은 2025년까지 1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구조가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해  서 얻는 것이라면 그 경제구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담배가 중독성이 있으며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도 기존 산업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다.

기술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 행복을 위해서 쓰일 길을 찾는 것은 우리의 숙제다.

게임 기술의 새로운 적용 분야도 개척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일단 학교에 하늘을 볼 수 있는 테라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