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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시사철]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정신으로 코로나를 이길 수 있을까

바람아님 2020. 3. 28. 18:01

(조선일보 2020.03.28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철] 낙관주의 vs 비관주의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15년 동안 갇혀 있던 오대수(최민식)는 감금방 운영자 박철웅(오달수)의 생니 15대를 뽑았다. 복수였다.

박철웅은 오대수를 찾아와 똑같이 되갚아주고자 한다.

집게로 입을 벌리고 장도리를 앞니에 갖다 댄 후 힘껏 돌리는 시늉을 한다.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는 오대수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박철웅이 하는 말.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나 용감해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이다. 스쳐 지나가는 대사지만 어떤 통찰이 엿보인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남긴 말과 비교해보자.

"인간을 혼란시키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다.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관한 우리의 표상이 무서운 것이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문제의식을 함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공포와 혼란과 고통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의 덕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스토아학파의 답은 한결같다.

'올드보이'의 상황을 놓고 말하자면, 고통이 닥쳐오더라도 미리 상상하고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자학적인 비관주의 모두를 피해야 한다.


중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가 앓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인류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약하게 만들고 있다.

비관주의와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은 사재기를 한다.

청와대는 한국의 시민 의식이 유달리 뛰어나기 때문에 사재기가 없다는 듯이 홍보하고 있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일부 한국인 또한 사재기를 했었다. 단지 그 단계를 좀 일찍 넘겼을 뿐이다.


반대로 낙관주의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도 보인다.

몇몇 서유럽 국가에서 이 와중에도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하고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긴다는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그들의 낙관주의를 보며 혀를 차게 된다.

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어리석은 낙관주의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교회의 예배는 행정명령을 내려 단속하는 와중에 민속촌에서 수많은 관람객을 앞에 두고

'코로나 퇴치 기원 굿'을 하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주말,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경의선 숲길공원은 많은 방문객으로 빼곡하게 북적이고 있었다.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접한 중국에서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곧 종식된다'며 일상을 즐기라고 권했다.

턱없는 낙관주의 대신 과학에 근거한 비관주의로 그 사태를 바라본 대만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찌감치 여행객의 왕래를 제한하고 강도 높은 방역 조치를 취해 사망자를 한 자릿수로 묶어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질병의 확산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대만은 진작 새 학기를 시작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4월 개학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난 22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학생들이 많이 찾는 PC방과 학원 등에 대한 운영 중단 여부를 각 지자체에 일임했으며

실제로 운영 중단 명령을 내린 광역지자체는 전라북도뿐이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를 시행한 이유는 4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이나 기대를 앞세워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질병의 확산과 방역은 목에 힘준 '윗분'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월까지만 참자, 딱 2주만 견디면 된다,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만약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토아 철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의지 '바깥'에 있다.

현명한 사람, 덕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 옳다.

다만 그것에 대한 반응만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절대 굴하지 않는 낙관주의를 바닥에 깔고서 말이다.

베트남 전쟁에 미 해군 파일럿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혔던 제임스 스톡데일의 경우가 그랬다.

평소 에픽테토스를 흠모하며 그의 책을 늘 곁에 두고 읽었던 그는, 바로 그 철학의 힘으로 무려 7년 반이나 되는

수용소 생활과 고문을 견뎌냈다.


모든 포로가 스톡데일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 낙관주의자들은 성탄절이면 해방될 거라고, 부활절이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거라고, 턱없는 희망을 품었다. 물론 그런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절망에 빠져 죽었다.

반면 가장 깊은 곳에 낙관주의를 품되,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혹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철학으로 무장했던 스톡데일은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서유럽과 미국을 보며 일각에서는 '선진국도 별거 없네'라고 빈정거리고 있다.

실로 우리 의료진의 능력과 헌신은 눈부시다. 시민 의식도 우리가 더 높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권의 수준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선진국의 지도층은 스톡데일 같은 비관론에 근거해 긴 싸움을 준비한다.

반면 우리의 정치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는 식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인구의 60% 이상이 감염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명한 후, 재정균형 원칙을 깨고

한화 200조원 상당의 추경안을 제시했다.

미국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약 1230조원 규모의 대책안을 내놓는다.

그 예산 중 일부는 본격화된 재택근무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프라 구축에 사용될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은 위기를 기회 삼아 상대적 격차를 더 크게 벌려나간다.

우리는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여 수많은 일자리와 미래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를 확보해 나가야 할 때다.


코로나 확산 초기, 청와대는 스톡데일의 길을 걷지 않았다.

매일 확진자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는 태도로 일관했을 따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확산을 초기에 막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더니, 다가올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시기 또한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철한 비관주의와 담대한 현실주의를 갖춘 리더십이 절실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7/2020032703798.html 




에픽테토스의 철학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자: 에픽테토스/강현규 엮음/ 키와 블란츠 옮김/ 메이트북스/ 2019/  124 p
199.1-ㅇ327어/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 [강서]2층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을 영국의 고전문학가 조지 롱이 1877년

영어로 번역한 것을 토대로 한 책이다. '엥케이리디온'은 핸드북 또는 매뉴얼이라는 뜻으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받아 적은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목차정보


옮긴이의 말_ 내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사는 법
1부 내 권한 밖에 있는 것들을 바라지 말라  / 2부 힘들고 괴롭다면 내 감정부터 돌아보자
3부 내게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 4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갈구하지 말라